<떼죽음부르는부실공사관리>3.입찰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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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성수(聖水)대교 상판붕괴 사고는 제3공화국이 얼마나 대형공사를 죽먹듯 부실로 했느냐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확실한 증거다.
3공시절 「성장」이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진 수없이 많은 졸속.
부실공사가 이제 그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대형공사가 왜 부실하게 이루어지느냐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공사 순서인 설계-입찰-시공-감리의 전 과정에서 썩을 대로 썩은 비리와 부조리,그리고 만사에 철저하지 못한 우리의 고질적 습관이 스며있다.
그러나 이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원인은 입찰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한마디로 입찰-낙찰과정에서 건설회사들은 정치자금.로비자금을 내야하고 회사의 이익을 미리 챙긴뒤 그 나머지 돈으로 공사를 해야 한다.
그러니 공사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부실을 안고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대형 건설공사 한건을 수주하려면 적어도 공사비의 10~15%에 달하는 돈을 정치권이나 관련 공무원등에게 바쳐야 하는 것이거의 공식화 돼 있었다.
인명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대형 토목공사는 기술이나 이론적 근거에 입각해 설계되고 시공되는 것이 아니라 번번이 정치논리로 출발했다.
특히 도로건설과 같은 대형 토목공사의 공사비 빼먹기는 거의 습관화 되다시피 했다.
완공후에도 속속들이 들여다 볼수있는 건축물과는 달리「주요공정이 모두 땅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덮어버리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형 토목공사 수주 뒤에는 으레 검은돈들이 오가곤했다.지금도 발주기관들은 예가(豫價)를 미리 특정업체에 알려줘공사권을 팔아먹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고 있다.
92년에 공공기관인 S공사가 발주한 8백억원규모의 수로개수공사 입찰이 6공의 가장 대표적인 권력형 입찰비리로 꼽힌다.이미주변에 대규모 간척공사를 한 D건설이 담합을 성공시켜 거의 공사권을 확보한 상태였던 이 공사는 청와대의 전화 한 통화로 또다른 D사에 공사권이 돌아갔다.청와대의 후원을 업은 D사는 사전에 예정가를 알아내 직접공사비보다 5백35원정도 많은 입찰금액을 써내 공사권을 확보한 것이다.
D사는 공사권을 밀어준 청와대 장본인에게 정치자금 명목으로 수십억원대의사례비를 바쳤고 공사수주에 직.간접으로 영향력을 발휘한 발주기관.정치권등에도 엄청난 커미션이 건네진 것으로 알려졌다. 빠듯한 공사비에서 엄청난 정치자금과 각종 커미션.뇌물등을 공제한 금액으로 공사가 과연 가능했는가.청와대 고위층의 힘을 빌려 수로공사를 수주한 D사의 경우 담합을 깨고 저가로 투찰했기 때문에 예정가의 85%선인 6백80억3천여만원에 공사를맡아 정치자금.각종 로비자금등에 들어간 10%정도를 제외하면 예가의 72%에 공사를 한 셈이다.여기에 적정공사비에서 55%,30%정도 소요되는 인건비와 장비비.자재비를 제하면 도리어 20%정도 적자를 보게된다.그러나 업체의 생리상 밑지면서 공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볼때 부실공사는 불가피하다. 대표적인 군사정권 시절인 3공은 그렇다치고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6공말기에도 사회혼란기를 틈타 공사권 팔아먹기가 극치를이뤘다. 도로공사.토지개발공사.한국전력.석유개발공사.가스공사등공공기관이 직접 발주하는 대형공사의 경우 대부분 낙찰률이 95%이상 고가(高價)수주사례가 많았고 특히 경쟁이 심한 도로관련공사는 정치권등 권력층및 발주기관과 유착,예정가.직접 공사비등을 알아내 공사를 따내는 일이 허다했다.
H건설의 L회장은『5공때 권력층의 도움을 받아 5백억원규모의도로공사를 따내 20억원을 정치자금으로 바쳤으나 돈이 적다고해서 10억원을 더 주었으며 공사도중에도 종종 손을 내밀어 그때마다 수천만원정도를 상납했다』고 실토한다.
한양대토목공학 이태식(李泰植)교수는『이제는 공사비를 충분히 줘 공사를 맡기고 대신 공사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면허취소등 강력한 조치를 내려야 한다』며『경실련과 같은 시민운동본부를만들어 부실공사 방지를 시민들이 감시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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