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즈드럼 대부 류복성 데뷔 50년 음반 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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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복합문화공간 KT아트홀. 순백의 타악기 연주자가 신들린 듯 봉고를 두들겼다. 호루라기를 불며 혼 섹션(트럼펫·색소폰)을 지휘하는 모습이 마치 야전사령관 같았다. 입고 있는 바지도 군복이다. 재즈 드럼과 라틴 퍼커션의 1인자 류복성(66·사진)씨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지만, 그는 호탕한 웃음과 넉살로 스스로를 재충전하며, 공연의 마지막까지 내달렸다. 가장 큰 박수를 받은 노래는 ‘혼자 걷는 명동길’. 1970년대 그가 연주는 물론 노래까지 했던 곡이다.

“내 마음 모른다네/아무도 모른다네/쓸쓸히 걸어가는 비에 젖은 내 마음을…”

류씨는 이렇게 50년 음악인생을 걸어왔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어도,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지 않았어도, 그는 묵묵히 타악 연주라는 외길을 걸었다. 재즈 황무지였던 국내 음악계에 재즈의 씨앗을 심은 재즈 1세대이기도 하다.

그가 데뷔 50주년 기념 음반 ‘류복성 재즈콘서트’를 내놓았다. 공연 직후 만난 그는 “50년 음악 인생에 남은 것이라곤 이번에 내놓은 CD 두 장뿐”이라고 말했다.

류씨는 1958년 미8군 무대의 재즈 드러머로 데뷔, 이봉조 악단(61년), 길옥윤 재즈올스타즈(66년) 등에서 드러머로 활동했다. 송대관의 ‘쨍하고 해뜰 날’, 나미의 ‘영원한 친구’ 등 그가 세션으로 참가한 곡만 수천 곡에 달한다. 70년대 초반 MBC 드라마 ‘수사반장’ 테마곡을 연주한 것을 계기로 TV에도 자주 출연했다.

“내가 하는 라틴 재즈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법은 TV 출연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묘기 대행진’에도 출연했죠. 타악기 봉고를 치는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그게 묘기라는 거에요.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한심하고 척박한 상황이었는지…”

‘수사반장’이 한창 방영될 때 사람들은 류씨가 테마곡을 연주한 사실을 잘 몰랐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 ‘수사반장’ 장면이 나오고, 케이블 TV에서 ‘수사반장’을 재방영하면서 그의 연주곡이라는 사실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 때 음악은 범인 잡는 음악이었어요. 그 음악을 들으면 다들 최불암의 수사반장을 떠올리죠. 그래서 류복성의 수사반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템포감 있는 라틴재즈 스타일로 다시 만들어 이번 앨범에 담았습니다.”

‘혼자 걷는 명동길’도 이번 앨범에서 큰 의미가 있는 곡. 그는 “37년 만에 원래 의도했던 내 스타일로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70년대 타악 연주자인 내게 제작자가 노래까지 하라고 해서 불렀던 곡이 ‘혼자 걷는 명동길’이었죠. 류복성 음악은 신나야 한다며 제작자가 템포를 빠르게 변조했어요. 원래 의도했던 바가 아니었죠. 그래서 재즈 연주자의 애환과 사랑을 담은 노래답게 다시 만들었어요. 한 곡이 원래 스타일을 찾기까지 37년이나 걸렸다는 것은 한 편의 드라마 아닌가요.”

‘혼자 걷는 명동길’ ‘사랑하고 싶다’(스탠더드 재즈 ‘Mo Better Blues’에 가사를 붙인 곡) 등은 후배 재즈가수 말로가 피처링해줬다.

늘 군복을 입는 이유도 각별했다. 단지 편하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저는 아직도 전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재즈를 대중화하려는 치열한 전쟁이죠. 재즈가 많이 확산됐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아직 멀었어요. 언젠가 재즈도 큰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당연, 재즈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재즈는 절대 늙지 않는 음악이니까요.”

글·사진=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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