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배명복시시각각

“포르케 노 테 카야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에게 “포르케 노 테 카야스(Porque no te callas)?”라고 직격탄을 날려 화제가 된 것이 얼마 전이다. 우리 말로 “입 좀 닥치지 않을래?”라는 의미다. 카를로스의 대갈일성(大喝一聲)이 요즘 스페인에서 휴대전화 컬러링으로 폭발적 인기라고 한다(본지 11월 21일자 2면). 이미 50만 명 이상이 휴대전화 벨소리로 내려 받았고, 이 컬러링을 제공하는 업체는 졸지에 220만 달러를 벌었다고 한다.

카를로스 국왕은 10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제17차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의 도중 손가락으로 차베스 대통령을 가리키며 “포르케 노 테 카야스”라고 쏘아붙였다. 스페인의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총리의 연설에 차베스가 자꾸 토를 다는 것을 보다 못해 대놓고 면박을 준 것이다. 차베스는 연설에서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전 스페인 총리를 ‘파시스트’로 지칭하고, “파시스트는 인간도 아니다. 차라리 뱀이 더 인간에 가깝다”고 극언을 퍼부었다. 사파테로 총리가 연설을 통해 이 말을 반박하는 대목에서 차베스가 계속 끼어들자 국왕의 참았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스페인어 “포르케 노 테 카야스”를 영어로 하면 “Why don’t you shut up?”이다. 점잖은 자리에서 할 말이 아니다. 과연 국왕이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한 언어를 구사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을 국왕이 대신했다는 데는 별로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스페인의 유력지 ‘엘 문도’는 “국왕이 전 국민의 이름으로 차베스를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며 차베스에 대한 책망은 “오래전에 있었어야 했던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국왕의 호통 소리에 많은 사람이 후련하고 통쾌하게 느꼈다는 얘기다.

차베스는 ‘21세기 사회주의’를 구현한다며 고(高)유가 덕에 쏟아져 들어오는 오일머니를 마구 뿌리고 있다. 국가의 장래보다는 눈앞의 인기에 치중하는 전형적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이다. 선심 공세에 신이 난 서민과 빈민층은 물론 좋아하고 있다. 이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차베스는 반대 목소리를 내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대통령 연임을 제한하는 헌법 조항을 뜯어고쳤다. ‘정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욕보이고 있는 그에게 할 말은 “포르케 노 테 카야스”다.

하지만 이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이 어디 차베스뿐일까. 대통령 출마 자격이 법적 논란에 휩싸이자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헌정을 중단시켰다. 이어 대법원을 허수아비들로 채워 법적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국법 질서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것이다. 때를 같이해 그루지야의 미하일 사카슈빌리 대통령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눈엣가시 같은 방송국의 문을 닫고, 시위대를 강제해산했다. 내가 하는 것은 옳고, 남이 하는 것은 다 틀렸다는 그의 독선과 아집 앞에서 할 말이 있다면 “포르케 노 테 카야스”다. 백성은 굶주리는데 핵무기를 만들어 ‘강성대국’을 외치고 있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나 “‘테러와의 전쟁’으로 세계는 더 안전해졌다”고 강변하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미안하지만 “포르케 노 테 카야스”다.

잘 차린 음식상 같아야 할 선거판을 먹을 것 없는 싸구려 뷔페 식당으로 만들어 놓고도 뻔뻔하게 표를 달라고 아우성인 우리의 대선 주자들도 “포르케 노 테 카야스”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정책은 뒷전인 채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정략만 난무하고 있다. 실책과 허물에 대한 참회와 반성도 찾아볼 수 없다.

‘정론직필(正論直筆)’을 업(業)으로 한다는 언론은 어떤가. 소리(小利) 때문에 대의(大義)에 눈을 감고, 정곡을 찌르지 못한 채 변죽만 울리고 있다면 언론 또한 “포르케 노 테 카야스” 라는 질책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