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여행>足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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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춘추시대 진(晉)의 공자(公子) 중이(重耳)는 못된 첩에 빠진 아버지 헌공(獻公)으로부터 간신히 목숨을 건져 망명생활을 하다가 귀국하여 마침내 임금이 되었는데 이가 문공(文公)이다.
그에게는 일등공신 개자추(介子推)가 있었다.망명 19년을 하루같이 모시면서 중이가 배가 고플 때 자기의 허벅지 살을 잘라고깃국을 끓여주었던 사람이다.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귀국 후 그는 개자추를 그만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다.
후에 『아차!』하고 생각한 그는 즉시 신하를 보내 찾아 오도록 했지만 그는 이미 금산(錦山)으로 자취를 감추고 난 뒤였다.군대를 풀어 며칠을 두고 산을 뒤졌지만 허사였다.문공은 불을질렀지만 그는 산이 다 타도록 끝내 나오지 않았 다.어머니를 등에 업고 나무를 부둥켜 안은 채 불에 새까맣게 타 죽어 있었던 것이다.문공은 통곡을 했다.
그는 개자추를 애도하기 위해 매년 이날만은 일절 불을 피우지못하도록 했다.그래서 백성들은 찬밥을 먹어야 했는데 이것이 한식(寒食)의 유래다.뿐만 아니라 그는 개자추가 부둥켜 안고 죽었던 나무를 잘라 나막신을 만들어 그의 상징물로 삼아 신고 다니고는 발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오!슬프도다.내 발 아래(足下)에 있는 나막신아!』 이때부터 족하(足下)라는 말은 상대방에 대한 존칭의 대명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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