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새 안주인 꿈꾸는 ‘3人3色’ 내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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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선 이틀 전이던 12월 17일.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부인 한인옥씨가 대구 서문시장에 마련된 연단에 올랐다. 한씨는 “이 후보가 그동안 야당하면서 정말 많이 힘들었다”며 눈물을 보였다. 시장을 메운 5000여 명의 시민은 “울지마”를 외치며 한씨를 격려했다.

5년이 흐른 이달 13일 무소속으로 신분이 바뀐 이 후보는 같은 장소에서 30대 유권자가 던진 계란 파편에 맞는 봉변을 당했다. 이 후보는 17일 “(당시) 아내가 놀랄까봐 전화를 했는데 굉장히 놀라더라”고 말했다. 대권 3수에 나선 후보의 부인이기 전에 한 남자의 아내로서 한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선 후보에게 아내는 최후의 보루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이해가 갈리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후보에게 아내는 사심없이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부인 김윤옥(60)씨는 37년,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부인 한인옥(69)씨는 45년,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부인 민혜경(51)씨는 26년을 남편과 보냈다. 어떤 참모도 넘볼 수 없는 세월의 무게다.

민혜경씨는 15일 전화 통화에서 “평소엔 보고 들은 것을 가감없이 남편에게 전한다”면서도 “이렇게 어려울 때 나까지 (쓴소리를) 하면 얼마나 힘이 들겠느냐”고 말했다. 정동영 후보는 이회창 후보 출마 후 3위로 떨어진 상태다. 민씨는 “요새는 가능하면 힘이 되게 돌려서 얘기한다”며 “서로 용기도 주고… 그러니까 견디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1위 후보 쪽은 어떨까. 남들 못하는 소리를 자주 한다고 이명박 후보가 ‘가정 내 야당’이라고 부르는 부인 김윤옥씨도 “3분의 2는 여당하고, 3분의 1만 야당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씨는 요즘 “오늘도 매사에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세요, 힘내시고 스마일∼”이란 말로 남편을 배웅한다고 한다. 그는 “(기업인 시절) 남편은 아무리 회사가 어려워도 ‘회사가 성장하려면 이 정도 위기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나를 안심시켰다”며 “(남편이) 자신감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내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상황이 어떻든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내조 스타일에서 이들 퍼스트레이디 후보는 그야말로 ‘3인 3색’이다. 이명박 후보 진영에선 김윤옥씨에 대해 “항상 긍정적이고 씩씩한 분”(정두언 의원)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 후보의 한 측근은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사모님과 함께 재래시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며 “갑자기 술 취한 사람이 시비를 걸어 수행한 사람들이 당황했는데 사모님은 오히려 ‘저분, 왜 저러시느냐’며 당당하게 대응하더라”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엔 이 후보 지원을 위한 발언의 수위도 약간 높이고 있다. 이회창 후보가 출마를 선언한 7일 “이명박 후보가 50%를 넘는 지지율 고공행진을 계속하니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며 “항해를 하다 보면 파도도 치는 것인데 이를 잘 넘어야 한다”고 한 게 대표적이다.

민혜경씨는 원래 조용하고 수줍은 성격이란 것이 주변 사람들의 평이다. 두 아들이 “조선시대 여인 같다”고 할 정도다. 민씨의 전주여고 후배인 신당 김현미 의원은 “정치인의 아내가 아니었다면 전혀 이쪽과 인연이 없었을 분”이라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요즘 ‘후보 부인 마케팅’에 가장 열심인 것은 정 후보 측이다. 민씨가 최근 여성중앙이 실시한 후보 부인 호감도 조사에서 1위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선거 홍보 포스터에 등장하고 공식 행사에서 시 낭송을 하는 등 활동범위를 넓히고 있다. 정 후보는 한 행사에서 “저는 1등을 한 번도 못하는데 집사람은 1등이라 후보를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최근 관심을 끄는 것은 한인옥씨의 ‘침묵’이다. 공개 석상에 모습을 비치지 않는다. 이회창 후보 측 인사는 “후보의 컨셉트가 ‘홀로서기’인데 부인이 거들면 외려 힘이 빠질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씨가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도 이런 방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김윤옥·민혜경씨보다 더 적극적일 때가 많았다. 2002년 10월엔 한나라당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부인 연찬회에서 “하늘이 두 쪽 나도 대선을 이겨야 한다”고 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한씨는 지금의 김윤옥씨와 비슷한 역할을 많이 했다. 차갑고 날카로운 이미지의 이회창 후보를 따뜻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게 그의 몫이었다. 2001년 부부가 함께 한 인터뷰에서 이 후보가 “‘여필종부’해야 한다”며 “여자가 필요할 때 (남편을) 종처럼 부려먹는다는 뜻”이라고 농담을 했을 정도로 이 방면에서 한씨의 역할은 작지 않았다. 한씨는 이미 10년 전 “미디어 시대의 옷차림은 정치인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1차적 요소”라고 말했다. 최근 주로 점퍼를 입는 이 후보는 “복장은 부인의 의견을 따르는 편”이라고 했다.

남편과 자신을 포함한 온 가족이 대선을 앞두고 일년 내내 검증 공방에 시달린 것도 5년 전 한인옥씨와 현재의 김윤옥씨 간의 공통점이다. 한씨는 2002년 5월 출입기자들을 서울 옥인동 자택에 초청해 “내가 사치하고, 핸드백도 명품만 메고, 심지어 호텔에서 헬스한다고 하는데 얼마나 (악성 루머가) 심한지 밖에 나서기도 겁난다”고 하소연했다. 귀족적 이미지란 얘기가 나오자 “요새는 남편 바지를 다릴 때 일부러 줄을 세우지 않는다. 좀 털털해 보이라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그가 침묵하는 것 역시 전략적 선택일 가능성이 커 보이는 이유다.

이 밖에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의 부인 박수애(55),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부인 강지연(64), 민주당 이인제 후보의 부인 김은숙(58)씨 등도 남편을 돕기 위해 뛰고 있다. 지지율 1∼3위 남편을 둔 세 사람에 가려 조명을 덜 받고는 있지만 열정만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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