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기의 머니 콘서트] 점(占)과 투자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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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대통령 선거철이 되면 역술인들이 주목받는다. 불확실한 미래를 미리 알고 싶은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투자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필자가 10년간 자산을 관리한 할머니가 있었다. 그 고객의 나이는 70대 초반이었다. 그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남편과 사별하고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한의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한의학을 배우다 중국의 여러 학문을 접하던 중 역술에 눈을 뜨게 됐고, 사주와 관상까지 볼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이름만 들어도 아는 정치인을 비롯해 많은 사업가가 그를 찾아와 운세를 묻곤 했다.

한번은 필자가 그의 통장을 정리하려고 고객 대기실을 비운 사이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곁에 있던 50대 중반의 여성 고객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한마디 건넸다고 한다. “요즘 아들 결혼 때문에 고민이 많지?” 그 말은 들은 여성 고객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는 “며느릿감이 맘에 안 들지?”라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여성 고객이 다가와 앉으며 관심을 가졌다. 그가 건네는 말에 여성 고객은 놀랐다. 자신의 인생을 지켜본 듯 속속 맞혔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여성 고객은 집으로 뛰어가 거실에 있던 대형 가족사진을 가져와 가족 평을 듣기 시작했다. 그 사건 뒤에도 할머니 고객은 필자의 부탁으로 여러 명의 VIP 고객의 운세를 봐줬다. 물론 모두 감탄을 하고 집으로 갔다.

흥미로운 건 그가 일찌감치 주식형 펀드에 투자했다는 사실이었다. 투자 시작과 환매 시기는 모두 본인이 정했다. 상품은 필자가 선택해 권했지만 그 외 모든 타이밍과 규모에 대한 의사결정은 본인이 직접 했던 것이다.

예금에만 투자하던 그가 주식형 펀드로 투자패턴을 바꾼 건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
을 때였다. 그때까지 외국계 은행을 빼고 국내 은행에서 펀드를 판매하는 곳은 전혀 없었다. 그만큼 생소한 상품이 펀드였던 것이다. 그는 필자의 만류를 뿌리치고 절묘하게도 외환위기 후폭풍으로 증시가 폭락하기 전에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펀드를 환매했다. 그리고 98년 주식시장이 회복될 즈음 다시 펀드에 투자해 또 많은 수익을 거뒀다.

필자가 “언제 투자하겠느냐”고 물을 때면 그는 ‘이제 올라갈거야’ ‘이제 다 왔어’라고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신기하게도 그의 말을 딱딱 맞아떨어졌다.

혹시 그는 남의 운세를 짚어내는 신통력으로 주식시장을 내다볼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필자가 뒤늦게 알게 된 것은 그가 칠순이 넘었는데도 경제와 증시에 대해 무척 해박했고, 평소 많은 책과 경제기사를 숙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신통력에만 호기심을 가졌지만 정작 그의 놀라운 투자 실력은 끊임없는 공부와 노력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남다른 역술 공력을 가졌던 그도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겸허하게 시장에 다가감으로써 결국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복기 삼성증권 PB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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