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사 팔리는 순수문학 가능성 보여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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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요즘 문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심심찮게 거론되는 출판사가 있다.80년대 민중문학의 본영 격이었던「창작과 비평사」가 그 주인공이다.어려웠던 시절 좋은책을 많이 낸 출판사니 칭찬의 변이 나오지 않았겠느냐고 판단하면 오산이다.사실은 그와 정반대다.『「창비」가 돈버는데 재미를 붙였다』고 상업주의를 비꼬는 얘기가대부분이다.
한 평론가는「창비」의 변화를「선홍색에서 핑크빛으로의 변신」이라고 비아냥거린다.이 말은「창비」가 90년대들어 과거의 지사적이미지를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이중의 풍자적 의미를 갖고 있다 .
「창비」가 상업주의의 혐의를 받기 시작한 것은 90년 소설『동의보감』을 내면서부터다.이 책은 지금까지 3백50만부가 팔려「창비」역사상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안겨다준 작품이지만 동시에「창비」가 과거의 이미지를 포기했다는 비난의 근 거가 되기도했다. 그러나 이때보다「창비」의 상업주의에 대한 비난은 문학성을 공인받은 최영미의 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와 공지영의 단편집『인간에 대한 예의』가 성공하면서 오히려 거세졌다.그 이유는 작품의 상업성이 짙어서가 아니라 이들 작품들이 많은 민중문학진영 문인들로부터「시류를 타고 운동을 판다」는 혐의를 받고 있고「창비」가 과거의 이미지로 이들에 대한 보증을 서고 있다는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90년대들어 새로운 논리를 찾지 못하고 혼돈속에 빠져있는 민중문학 진영 내부로서는「창비」의 전략이 상업주의로의 변질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그러나「창비」의 출판 전략은 80년대에대한 순결성이란 관점을 떠나 90년대 우리문학이 처한 위기상황과의 관련속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을듯 싶다. 『동의보감』을 제외하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80만부)『서른 잔치는 끝났다』(40만부)『인간에 대한 예의』(8만부)등「창비」의 베스트셀러는 통상적 의미의 상업적인 책들은 아니다.지존파가 즐겨봤다는 범죄소설이나 만화에 가까운 황 당한 추리소설과는 차원이 다르다.누가봐도「창비」의 베스트셀러는 사회적으로 유익한 책들이다.
문학에 한정해도「창비」의 전략은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90년대들어 문학 시장은「안 팔리는 순수문학」과「잘 팔리는 삼류문학」의 양극화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문인들이나 출판사들은 앞으로 이 상태로라면 순수문학의 입지는 점점 줄어 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그리고 어떻게 하든 순수문학도 그 외형은 시대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아직 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창비」의전략이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창비」는 적어도 이 시대에도 순수문학이 팔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팔리는 순수문학」이 앞으로 우리문학이 지향해야 할 과제라고 본다면「창비」의 전략은 비난의 대상이기보다참고해야 할 연구대상에 가깝다.
혹자는「창비」의 성공이 책들이 가진 교묘한 상업 장치와 광고공세 때문이고 그래서 상업주의라는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저질 상업소설들이 엄청난 물량의 광고를 내세워 문학시장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이 런 상황에서순수문학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작품의 적절한 상업 장치나 광고와 같은 적극적인 방어전략도 필요한 것이다.
〈남재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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