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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못 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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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계급 분화로 아시아에서 신분 상승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

겉으로만 보면 톈수이웨이(天水圍)는 도시 황폐화의 전형이 아니다. 인종 갈등이 심한 프랑스의 공공주택 단지나 무너져가는 미국의 도심 “프로젝트”들과 비교할 때 홍콩의 이 최신 위성도시는 제법 살 만해 보인다.

그러나 풍경 좋은 공용면적, 화사한 주거단지와 놀이터 뒤에는 부인 못할 사실이 있다. 27만1000명이 모여 사는 그곳은 사실 빈민굴이다. 이곳에는 40층씩이나 되는 수십 개의 비좁은 고층타워가 마치 덤불 속의 죽순처럼 모였다. 이 지역의 실업률은 20%로 홍콩 평균치의 다섯 배다.

학교들도 최악의 수준이다. 일자리가 있는 사람도 상당수가 점증하는 근로 빈민층에 속한다. 톈수이웨이는 홍콩뿐 아니라 발전을 함께해 온 동지들, 다시 말해 한때 동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로 불렸던 경제가 직면한 사회·경제적 도전을 상징한다.

1980년대에 홍콩·싱가포르·한국·대만에 붙었던 그 호칭은 자원 부족, 만연한 가난, 정치적 격변을 이기고 한 세대 만에 공업화된 중산층 사회로 변한 무역기반 경제를 찬양하는 표현이었다. 공업화 과정에서 그 나라 인재들은 미천한 출신을 딛고 오늘의 재벌, 최고 학자, 정치 지도자가 됐다.

사회 이동성의 이점을 보려면 굳이 정치 지도자의 관저 너머 멀리 기웃거릴 필요가 없다. 도널드 창(曾蔭權) 홍콩 행정장관은 공공주택에서 자랐다. 소작인의 아들로 자란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은 법대를 수석 졸업했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은 가난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사법시험에 합격해 인권변호사가 됐다. 이 세 사람은 급성장하는 그들 사회가 제공하는 한없는 기회를 구현했다. 다만 자신에게 열렸던 문호가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겐 닫혀 버린 시대에 통치를 한다는 점이 문제다.

이 지도자들은 “출발선이 꽤 평등했던 세대 출신이다. 모두 가난했고 평탄한 마당이 펼쳐져 있었다”고 옥스팸 홍콩 지부 책임자 존 세이어가 말했다. “이제는 계급 분화가 심화돼 간다.”

이 호랑이들은 1980년대 미국의 철강산업지대가 겪은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당시 디트로이트와 피츠버그 같은 공업도시가 내리막에 들어서면서 결과적으로 제조업을 바탕으로 형성된 중산층이 고통 받았다.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는 물론 철강산업지대가 아니다.

성장의 견인차로서 제조업을 탈피해 다양한 신규 산업과 서비스로 이동했다. 이제 낮은 학력이나 신통찮은 기술로 노동시장에 들어가는 젊은이가 생계임금을 주는 일자리를 얻기는 불가능하다.

신규 노동시장은 엄격하게 분화됐다. 화이트칼라 전문직이 사다리 꼭대기를 차지하고, 수많은 비정규직과 시간제 근로자가 지탱하는 서비스 분야가 밑바닥에 자리 잡았다. 심지어 경제성장이 탄탄한 시기에도 중산층이 그 중간에 어정쩡하게 매달렸다.

“호랑이 경제는 성숙해 가면서 부자와 빈자의 양극화에 직면했다”고 삼성경제연구소의 이지훈 수석연구원이 말했다. “부의 불평등은 경제성장의 그림자와 같다.”

네 마리의 호랑이는 잘나가던 시절 일자리를 마구 창출했다. 각기 성장전략은 달랐지만(한국은 중공업을 건설하고 대만은 중소기업을 육성했으며, 싱가포르는 준국영기업을 키웠고, 홍콩은 자유방임 자본주의를 수용했다) 모두 넘치는 잉여노동력을 이용했다.

근로자는 가족을 부양하고 자녀를 교육시키며, 조촐한 집을 마련하고 심지어 자영업을 시작하기에 족한 돈을 벌었다.

그중 한 사람이 고윤열(高潤烈·50)이다. 고씨가 가장 잊지 못할 어린 시절의 추억은 배고픔이다. 고씨는 용접공이 되어 직업학교를 마쳤고 스물한 살에 현재 세계 최대의 조선소인 현대중공업이라는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 30년 뒤 그는 현대에서 최고 기술자를 지칭하는 “기장”이 됐다. 연봉은 7만 달러다.

두 아들을 대학에 보냈고 아내와 함께 안락한 자기 아파트에서 산다. 2004년에는 회사가 보내주는 유럽여행도 다녀왔다. 8년 뒤 정년퇴직해야 하지만 전혀 걱정이 없다. “우리 식구가 먹고살 돈은 충분하다”고 그가 말했다. “내게 멋진 삶을 준 회사와 조국에 감사한다.”

그의 후임자들은 그런 고마운 마음을 갖기 어렵다. 1980년대 후반 중국·베트남 같은 저비용 경제가 투자에 문을 열면서 고씨 같은 일자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뒤로 네 마리 호랑이는 상당수 제조업 일자리를 해외로 이전하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하이테크 서비스, 금융, 물류 등으로 초점을 바꿨다.

덕분에 대학교육을 받은 은행원, 주식 중개인, 공급체인 관리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에게 새 기회가 생겼으나 노동시장의 대다수에게는 기회가 줄었다. 1986년 이후 60만 개 이상의 공장 일자리가 사라진 홍콩에서는 서비스 분야가 취업의 최대 견인차가 됐다.

그러나 대다수 일자리가 저기능직에 최저임금을 주며 복지혜택도 거의 없다. 톈수이웨이 주민들이 많이 일하는 청소부, 점원, 경비의 월급 초봉은 고작 400달러다.

“과거에는 서민들이 기업가가 되거나 공장 사장이 됐다. 희망이 있었다”고 홍콩중문대학의 사회복지학과 교수 웡훙이 말했다. “이제는 서민층이 중산층으로 신분 상승을 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교육위기가 이 상황의 악화에 부채질을 한다. 우선 일류대학(정부가 지원하는 공립기관)은 신엘리트층의 자녀를 신입생으로 뽑는다. 그만한 성적이 안 되는 학생은 등록금이 더 비싸고 명성도 떨어지며 졸업생을 일류대학처럼 좋은 일자리에 취직시키지도 못하는 사립대학에 가야 한다.

수치로 보자면 한국 전문직종의 3분의 1이 자녀를 4년제 대학에 보내 농민과 블루칼라 근로자의 7%와 대비된다. 대만의 경우 2004년 국립대만대학 신입생의 60% 이상이 10대 일류고 출신이었다.

교육자들은 입학여건이 공평하다고 말한다. 대다수 대입제도가 시험을 토대로 하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도 빈부 간의 입학 불균형이 열성적인 부자 학부모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자녀에게 강요하는 과외공부와 관련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과외공부에는 통상적으로 개인교사, 사설학원, 과외활동, 심지어 여름방학을 이용한 해외어학연수(일류대학에 들어가려면 꼭 필요한 이력이 된다)가 포함된다. 한국의 경우 사교육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네 배라고 정부가 발표했다.

“1970년대에는 홍콩의 대다수 가구가 가난했으나 이제 중산층은 악기와 스포츠 장비 구입이나 기타 학문적 교육에 자원을 쓴다”고 홍콩중문대학의 웡 교수가 말했다. “요즘은 학생들에게 디지털카메라나 인터넷을 이용하는 숙제를 내는 학교가 많다. 교육 격차가 더 넓어졌다.”

고등학교 성적이 상위권에 못 드는 학생은 보통 사립대학이나 2년제 전문대로 방향을 돌리고 장학금이나 융자를 이용해 학비를 댄다(공립 공대와 종합기술전문대가 주종인 싱가포르는 예외다).

이런 학교(그중에서도 가장 형편없는 학교는 학문적 기준도 엉망이다)는 졸업 후 취업 전망이라는 면에서 투자가치가 떨어지지만 지난 10년 동안 대학교육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데 기여했다.

한국에서는 고졸자 10명 중 8명이 2년제나 4년제 대학에 진학한다. 인구가 2300만 명인 대만의 경우 공식 통계에 따르면 대학생 수가 1996년 이후 세 배로 증가해 현재 93만 명 수준이다. 양국 교육자들은 대학생이 너무 많지 않으냐는 논의를 하면서 강제 통합이나 좀 더 엄격한 졸업심사를 통해 학생 수를 줄이는 방안을 연구한다.

문제는 교육이 반드시 나은 취업 전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대를 나오거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4년제 지방대를 나온 한국인 대졸자는 심지어 미천한 일자리를 찾는 데도 애를 먹는다.

예컨대 올해 초 부산 남구청이 환경미화원 네 명을 뽑을 때 지원자 103명의 절반 이상이 전문대 졸 이상의 고학력 소유자였다. 최근 조사에서 한국 대학생의 68%는 곧 직면하게 될 취업시장 때문에 “심한 위기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편 대만에서는 올 6월 대학을 졸업한 25만 명 중 약 10만5000명이 9월 말 현재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어제 백화점에 갔더니 내 제자 한 명이 화장품 판매원이었다”고 타이베이에 있는 어느 사립 명문대의 교수가 말했다. “생각해 보라. 대졸자가 화장품을 파는 수당으로 살다니. 전에는 고졸자가 하던 일이었다.”(이 교수는 상부의 반응을 우려해 대학이름을 공개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이 모든 일이 10년 만에 가장 탄탄하게 경제가 성장하는 와중에 일어난다. 그러나 요즘 호경기의 과일은 부자들이 따먹으면서 사회 분화만 심해진다. 톈수이웨이에서는 일련의 심란한 사건이 일어나 위기사회의 단면을 보여줬다.

가장 최근 사례를 보자. 생활고에 시달리던 주부가 지난 10월 아파트 24층 발코니에서 두 자녀를 밑으로 던지고 자신도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정신병을 앓았다는 이 여인은 본토 출신으로 복지수당을 받으며 살아갔다. 남편은 암으로 입원 중이었다.

이 여인이 남긴 유서에는 혼자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는 말이 여러 차례 쓰였다. 이 비극으로 두 가지 논쟁이 촉발됐다. 하나는 신도시에 국한되고, 또 하나는 점증하는 홍콩의 빈민 문제와 관련된다.

신도시 주민들은 높은 교통비, 현지 일자리 부족, 본토에서 오는 신규 이주자를 모두 공공주택에 배정하는 정부 정책으로 그곳이 빈민가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매슈 청 노동장관은 지난주 입법위원, 사회운동가, 주민들과 모임을 갖고 현지 주민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종합대책을 1월까지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지가 보도했듯이 그는 주민들의 감정적 대응을 잘 참아냈다. 한 임신부는 땅바닥에 동전을 던지고는 이렇게 선언했다. “동전 나부랭이나 주면서 정부는 우리를 거지 취급한다.”

우연찮게도 홍콩 정부는 지난주 성문화된 최초의 최저임금법 제정을 목적으로 하는 협의를 조만간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인위적인 바닥임금은 홍콩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입장을 바꿨다.

도널드 창 행정장관은 10월 초 연례 정책연설에서 홍콩은 “사회 이동성을 촉진하고 빈민을 도우며 취업 기회를 창출하고 보살피는 문화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발전 3년의 과실이 부자들에게 편중됐다는 간접 시인이었다.

고속 경제성장으로 네 마리 호랑이 중에서 가장 훌륭한 노동시장을 만든 싱가포르에서도 리셴룽(李顯龍) 총리는 올해 초 소득격차가 문제라고 경고했다.

지난 9월 싱가포르 국립대 재학생들을 만난 자리에서 총리는 정부가 점점 “외국인, 관광객, 부자들”에게나 신경을 쓰기 때문에 자신이 중산층 대열에서 탈락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학생의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총리는 싱가포르가 “대다수 시민이 높은 삶의 질을 누리는 곳이 되어야 하며”, 그러지 못하면 집권당이 유권자들로부터 버림을 받는다고 대답했다.

소득격차는 사실 정치 문제다. 따라서 호랑이 네 마리 중에서 가장 민주적인 호랑이 두 마리가 불평등의 시정에 앞장섰다. 천 총통의 지휘 아래 대만은 국민건강보험의 범위를 넓히고 교육예산을 늘렸으며, 저금리 융자를 양성하고 근로자·농민·노인 지원을 늘렸다.

한국의 노 대통령은 높은 세금을 통해 부를 재분배하고 빈민 사회복지를 확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마리 호랑이의 소득격차는 커져만 간다. 잘사는 조선소 기술자 고씨는 그 추세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애먹는 요즘 청년들이 딱하다”고 말했다.

“사정은 과거가 더 어려웠지만 그때는 기회라도 있었다.” 오늘과 비교해 더 이상 극명하기도 어렵다. 네 마리 호랑이는 궁핍의 시대를 멀찍이 떼어놓았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도 사회의 귀한 인재들이 자신의 지위와 상관없이 출세하게끔 했던 원동력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했다.

With B.J. LEE in Seoul and SONIA KOLESNIKOV in Singap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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