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테마읽기] 권력과 부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부패는 권력의 본질적 속성일까? 도덕적 정당성을 최후의 보루로 삼는 듯했던 현 정권의 몇몇 권력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패는 사회적 신뢰를 좀먹고 개인의 정당한 성취동기를 무너뜨리며 사회 전체의 불필요한 비용을 증가시킨다. 그런 부패가 암암리에 당연시되는 잠재규칙으로 자리 잡는다면? 최근 급속한 경제 성장과 함께 부패에 골머리 앓고 있는 중국의 역사가 그러했다고 주장하는 책이 우쓰의 『잠재규칙』(황매)이다.

청나라 때 사천 지역 지방관들은 절도 사건이 일어나면 근처에 사는 부자들을 범인 은닉죄로 잡아들이곤 했다. 부자들의 주머니를 털기 위한 부당한 인신 구속이었음은 당연한 일. 사료로 쓰기 위한 풀을 유상으로 수매해야 하는 관리들이 저울을 속이는 것은 물론, 수고비까지 거둬가는 게 다반사였다. 이런 부당한 준조세에 격렬히 항의하는 백성은 12년의 옥살이를 해야 했으니, 백성들은 뇌물이라는 잠재규칙과 적당히 타협해 살 수밖에 없었다.

어디 중국만 그러했을까. 사대부 관료제 국가에서 관료가 부패하면 국가가 유지되기 힘들다. 그래서 조선은 관료의 부패를 감시하고 막는 데 공을 들였다. 이성무의 『조선의 부정부패 어떻게 막았을까』(청아출판사)에 따르면, 중앙 정부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한 대간과 지방관의 부패를 감찰하는 암행어사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임금에게 간언하고 국정을 감찰하는 관리들의 자격 요건이 눈길을 끈다.

최고 수준의 학문적 실력을 갖추어 정치적 식견이 높아야 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기개를 갖추어야 하며 스스로 청렴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이런 자격 요건에서 이른바 떡값 논란이 첨예하게 전개되고 있는 요즘을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조선 왕조가 500년 간 유지된 원인을 부정부패 방지 노력에서 찾는 저자의 관점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부정부패 방지를 위한 제도적 시스템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나라는?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 조사에서 43위를 차지하고 있다. 경제 규모로는 세계 10위권인 나라가 그러하다니, 진정한 선진국 도약의 계기는 경제 못지않게 부패 척결과 방지에도 있을 것이다. 국제투명성기구를 설립하여 세계적인 비정부 공익기구로 성장시킨 페터 아이겐은 『부패에 반대한다』(문학과 지성사)에서 부패를 일종의 필요악으로 용인하는 태도야말로 부패가 자라나는 온상임을 지적한다. 부패는 경제 구조를 왜곡시키고 불평등과 가난을 낳는 사회악이라는 것.

페터 아이겐은 세계은행에서 일하면서 국제 원조를 좀먹는 부패의 심각성을 깨닫고 부패 반대 운동을 벌였지만 법무팀의 제지를 받았다. 그는 회원국이나 이해 당사자의 압력이 작용했던 것으로 추측한다. 전화 한 대만 놓인 사무실에서 국제투명성기구를 만든 그에게 처음 돌아온 것은 냉소와 회의였지만, 그의 뜻에 공감하는 이들과 함께 오늘날의 국제투명성기구를 이뤄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희망이라 할 수 있겠다. 이상 세 권의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다. 당연한 것들이 제대로 실현되어 있지 못하다는 사실만큼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게 또 있을까?

표정훈<도서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