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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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떠난 자와 남는 자(28)병원 앞 긴 나무 의자에 앉아 명국은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보는 마음에따라 저렇게 다르구나,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저 너머는 갈 수 없는 곳이다.그렇게 생각했을때 저 바다는 벽이었다.그러나 이렇게 앉아 마음 속에 낀 때같은 것들을 다 버리고 바라보는 바다는 이미 벽이 아니지 않은가.위안이 되고 먼 그리움 같은 것도 되고 이렇게 평화롭게까지 느 껴지지 않는가.이게 사람 마음의 간사스러움인가.
아니지,사람살이가 이런 거겠지.맞아,그래,이런거 아니겠어.
이게 사람 살아가는 거겠지.춥네 덥네,배 고프네 사람 못 살겠네 해도 이렇게 바라보면 한 핏줄처럼 느껴지는 저 바다,저 산.그래서 그곳에 묻혀서 사람은 살고 또 죽는 거겠지.
죽는 거 그건 무섭지 않다.잊혀지는 게 무섭다.난 늘 그랬었지. 죽는 거야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그게 무엇인지 나도 모른다.그러나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간다는 거 그건 죽음보다도 늘 더 나를 괴롭혀온 무서움이었다.생각해 봐,나 죽은 무덤 위에서할미꽃도 피고 아이들은 덧없이 뛰어 노는 그 봄날을 말이다.그때 나는 누워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하냐 말이다.
저 녀석이 어쩐 일일까.언덕길을 올라오고 있는 길남의 모습을명국은 가만히 내려다보았다.화순이 데리고 가는 따위 짓일랑 하지말라고 했던 지난번 이야기가 마음에 걸려,그에게도 삭혀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그렇게 심하게 말하지 않아도 됐을 걸.
길남이 다가오며 꾸벅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날씨… 춥지 않으세요.』 『그냥 좋구나.』 모포로 다리를 감싸듯 덮고 있는 명국의 뒤에 와 서며 길남이 물었다.
『많이 좋아지신 거 같아요.』 『좋아질 게 뭐 있어야지.이렇게 사는 것도 있나보다 생각하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구나.일 안하고 밥 먹어본 건 평생 처음이거든.』 길남이 피식 웃었다.다알아요.그런 마음이 속좋아서 하는 소리라는 것쯤은 저도 알아요.이를 악물며 길남이 물었다.
『태성이라고 아시지요?』 『진득하니 말이 없고 그 몸 큰 아이 말이냐?』 『네,그 애가 같이 튀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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