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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연장 순례] 프라하 루돌피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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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음악의 아버지’스메타나의 대표작은 교향시‘나의 조국’이다. 이 곡은 1882년 11월 5일 프라하 조핀 궁정에서 초연됐다. 19세기 프라하의 문화적 중심이었던 블타바 강변의 슬라브 섬에 1872년 들어선 네오 르네상스식 궁정이다.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무도회장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프라하에는 변변한 콘서트홀 하나 없었다.

체코저축은행이 창사 50주년 맞아 건립

체코 최대의 금융사인 ‘체코저축은행’(Ceska sporitelna)은 1874년 창사 50주년을 맞아 ‘예술가의 집’을 짓기로 했다. 콘서트홀과 미술관을 합친 유럽 최초의‘아트센터’다. 블타바 강변에 번듯한 대지도 구입했다. ‘레지스티’라고 불리는 이곳은 원래 시장이 열리던 곳이다.

오스트리아와 체코에서 활동하는 저명 건축가 8명을 초청해 설계 경기를 치렀다. 프라하 공대 건축과 교수로 있는 요제프 지텍, 요제프 슐츠의 설계안이 심사위원들로부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심사위원회는 설계 경기 규칙에 부합하는 설계안은 하나도 없다며 선정작을 뽑지 않으려고 했다. 독일의 저명한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1803∼79)가 은행 이사회에게 보낸 추천 편지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결국 콘서트홀과 미술관을 한 지붕 아래 배치한 지텍과 슐츠의 설계안이 채택됐다.

젬퍼는 이 편지에서 지텍-슐츠의 설계안이 콘서트홀과 미술관을 별개의 건물로 설계해야 한다는 심사 규정에는 위배되지만 그 자체로 실용적인 면에서나 예술적인 면에서 손색이 없는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젬퍼는 1841년 드레스덴에 개관한 오페라 하우스를 설계한 사람으로 유명하다(이 오페라 극장은 그의 이름을 따서 ‘젬퍼 오퍼’로 불린다).

콘서트홀ㆍ미술관이 한 건물에…유럽 최초의 아트센터

1885년 2월 8일 예술가의 집 개관 기념공연에는 오스트리아의 루돌프 왕자(1858∼89)도 참석했다. 이 콘서트홀은 그의 이름을 따서 ‘루돌피눔(Rudolfinum)’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프라하 시민들은 ‘루돌피눔’하면 프라하 성에 살았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루돌프 2세(1576∼1611)를 떠올린다.

1895년 11월 체코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오페라 반주에서 벗어나 자체 연주를 위한 교향악단을 결성한다.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작 등 체코의 유명 음악인들과 단원들이 서명한 창단 선언문의 골자는 프라하에서 심포니 공연을 정기적으로 개최해 단원들의 부수입을 늘린다는 것이었다.

창단 공연은 1896년 1월 4일 루돌피눔에서 열렸다. 드보르작이 지휘봉을 잡고 ‘신세계 교향곡’이 연주됐다. 1893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세계 초연된 이 작품이 프라하에서 첫선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체코 필하모닉의 상주 무대

1901년 체코 필하모닉 단원을 겸했던 체코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오페라 총감독 카벨 코바조비치에게 항의의 표시로 연주를 거부했다. 화가 난 총감독은 단원들을 전원 해고하고 다른 오케스트라를 반주 악단으로 데려왔다. 체코 필하모닉은 이때부터 1945년 10월 22일 대통령령으로 국립으로 승격되기 전까지는 단원 모두가 생존을 위한 힘겨운 투쟁을 벌여야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통치에서 벗어나 공화국으로 독립한 체코는 마땅한 국회의사당이 없었다. 루돌피눔은 1919∼39년 임시 국회의사당으로 개조해 사용됐다. 연단을 설치하면서 1884년 독일의 빌헬름 자우어가 설계한 파이프 오르간도 무대에서 철거됐다. 이 오르간은 브루노 음악원에 기증됐다(현재의 파이프 오르간은 1975년에 제작된 리거-클로스 오르간이다). 안토닌 엥겔이 인테리어 개조 공사의 설계를 맡았다.

체코 제헌 국회의사당으로 사용

나치 독일이 체코를 병합하면서 음악을 워낙 좋아하는 독일인들은 프라하에 콘서트홀을 짓고 싶어했다. 하지만 루돌피눔을 복원하는 쪽을 택했다. 안토닌 엥겔이 다시 복원 공사를 맡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체코 국회의사당은 증권거래소 건물로 자리를 옮겼다.

루돌피눔은 다시‘예술가의 집’이 되었다. 콘서트홀로 복원하는 과정에서‘수크 홀’도 마련했다. 체코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수크(1874∼1935)의 이름을 따서 만든 실내악 홀이다. 원래 분장실로 쓰던 공간이다. 1994년부터는 프라하 음악원이 입주해 있던 갤러리도 원래 설계대로 미술 전시장으로 꾸몄다. 프라하 음악원은 옆 건물로 이사했다. 메인 홀은 ‘드보르작 홀’로 명명됐다.

루돌피눔은 네오 르네상스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 얀 팔라크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파사드는 1841년 화재로 소실된 드레스덴 젬퍼 오퍼를 닮았다. 지붕 난간에는 루드빅 시멕, 노마스 제이단, 보후슬라브 슈니리크 등 체코 출신 작곡가들의 조각상이 서 있다. 루돌피눔의 앞마당 격인 얀 팔라크 광장에는 드보르작의 동상이 서있다. 출입국 계단 양쪽에는 뮤즈신, 콘서트홀 입구에는 사자, 미술관 입구에는 스핑크스 상이 버티고 있다.

◆공식 명칭: Rudofinum

◆홈페이지: www.rudolfinum.cz

◆개관: 1885년 2월 8일

◆건축가: Josef Zitek, Josef Schultz

◆객석수: 드보르작 홀 1104석, 수크 홀 222석

◆부대시설: 루돌피눔 갤러리, 세리모니 홀 200∼500석, 칼럼 홀 80∼150석

◆상주 단체: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프라하의 봄 페스티벌, 프라하의 가을 페스티벌

◆초연: 드보르작‘교향곡 제8번’(1890년). 말러‘교향곡 제7번’(1908년)

◆교통: 지하철 A선 Staromestska

◆주소: Alsovo nabrezi 12, Prague 1

◆전화: 420 227 059 111

◆극장 투어: 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은 쉼)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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