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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갓일기능보유자로 지정된 제주관모공예 金仁할머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예전 한국의 남성들은 정장을 하려면 우선 망건을 머리에 두르고 탕건을 쓴 다음 갓을 썼다.그래서 「한국의 전통 모자」하면먼저 떠오르는게 갓이다.이런 갓.탕건.망건을 만드는 관모공예(冠帽工藝)는 제주도와 경남충무(통영)및 거제도 등에서 중요한 가내부업으로 전승돼 왔다.
투박한 말총과 더불어 칠십평생을 살아온 김 인(金 仁.74)할머니. 「저승길이 오락가락하는」 시퍼런 바닷속 깊이 자맥질을하며 해산물을 캐내는 해녀들의 물질과 더불어 제주시도두동 일대에서 치러졌던 갓일은 제주여인들에게 주어진 소중한 삶의 방편이었다. 金할머니는 지난 85년 갓일을 해온 제주여인으로는 처음으로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인 갓일 기능보유자로 지정된제주관모공예의 산 증인.
예로부터 말이 많은 고장이기에 말총을 쉽게 마련할 수 있었던지라 할머니에게 갓은 자신의 삶 그 자체였다.
『쓸만한 갓을 만들려면 정성스레 손을 놀릴줄 알아야 해.그저촘촘히 말총을 쥐고 있어야지 안 그러면 영락없는 짚세기를 엮어놓은 꼴이지.』 金할머니가 갓을 처음으로 엮기 시작한 것은 7세때 어머니의 무릎 밑에서 말총을 더듬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때만해도 여자애 예닐곱살이면 어른들 틈에서 기량을 익히고 용돈도 벌고 재산도 늘리면서 평생 굼튼튼한 부업으로 삼았다.
제주시 도두마을에서 그저 농사만 고집하던 농부의 셋째딸로 태어난 할머니는 자신의 할머니가 해왔고 어머니가 이어왔던 갓일을「평생의 업」으로 이어오고 있다.
갓일을 해온지 50여년이 넘은 지난 80년 한국문화재보호협회가 주관하는 제5회 전승공예대전에 처녀출품한 이후 지금까지 세차례에 걸쳐 공예대전에 입상한 할머니의 갓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그러나 할머니의 이같은 애정에도 불구하고 도두마을만해도갓일을 가업으로 삼겠다는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있다.
수년전만해도 둘째딸과 며느리가 갓일을 이어가겠다고 할머니의 손길을 배우기도 했지만 「돈이 되지 않는」 일이어선지 중도에 포기했다. 『내가 30대였을 때만 해도 이 동네 아낙들이 갓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부모로부터 꾸지람을 듣곤 했는데 이젠 아무도 갓을 만드는데 관심을 갖지 않아.하긴 뭐 돈되는 일도 아니고 요새 여자들이야 이보다 더 좋은 돈벌이가 많으니….』 할머니는 예전부터 양반이라면 갓을 떠올리듯 우리네 전통의 상징이갓인데 이 기술을 전수해 줄 사람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지금 죽어버리면 너무 억울해.내가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내 대신 곱고 아름다운 갓을 만들 수 있는 제자를 만들어야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텐데….』 17년전 남편과 사별한 할머니는 애지중지 손끝놀림으로 만들어 온 우리의 갓을 보듬고 앉아 이 길을 누군가 이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濟州=梁聖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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