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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돈 내기 힘들었지만 이젠 옷도 사고 여행도 하고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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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 02면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 구사마을은 대표적인 연금마을이다. 이장 김영조(왼쪽에서 세번째)씨를 비롯한 연금수령자들이 마을회관에 모였다. 정읍=신동연 기자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 구석리 구사마을. 10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사방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주로 논농사를 짓고 있다. 진사가 아홉 명 나온다는 전설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 이 마을 노인들은 서울 관악산 등산을 가기도 하고 단풍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노인 36%가 국민연금 받는 정읍시 구사마을

지난달 31일 기자가 방문했을 때 정읍축산축제가 한창이었고 주민들이 소싸움을 보러 가기 위해 마을회관에 모였다.

노인들이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원천은 국민연금이다. 이 마을은 노인 88명 중 32명(36%)이 연금을 받는 ‘연금 마을’이다. 할아버지들은 연금이 나오는 월말이면 읍내로 나가 막걸리 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할머니들은 읍내 미용실로 간다. 28명은 보험료를 낸 당사자들이 받는 노령연금이고, 4명은 연금을 받던 배우자가 사망하면서 유족연금을 받고 있다.

이들은 1995년 농어촌 지역 주민들에게 국민연금 제도를 확대 할때 5년 이상만 가입하면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한 특례노령연금 수령자들이다. 당시에 최소한 15년 가입해야 연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나이가 많은 점을 고려해 특혜를 준 것이다. 특례노령연금은 의무가입이 아니다 보니 상당수가 가입하지 않았다. 국민연금공단은 한 마을 노인의 20~30%가량이 국민연금을 받을 경우 연금마을로 부른다.

구사마을 노인들은 매달 적게는 8만3000원, 많게는 30만원을 연금으로 받고 있다. 8만원을 받는 사람은 월 보험료로 4000~5000원, 30만원을 받는 사람은 월 8만~10만원을 냈다. 평균적으로 12만5000원의 연금을 받고 있다. 16명은 연금을 받기 시작한 지 7년이 넘었다.

다들 연금 액수가 적다는 점에 대해 불만이 많다. 마을 이장 김영조(67)씨는 “애들이 주는 용돈보다 연금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용선(61)씨는 “그걸로는 용돈으로 쓰기에 많이 부족하지”라고 거든다.

그러면서도 매달 통장에 꼬박꼬박 꽂히는 연금에 고마움을 표한다. 여제단(70·여)씨는 “솔직히 부족하고 작은 돈이지만 감사하게 받는다”면서 “4년 전부터 연금을 받고 있으며, 넣은 돈(보험료)보다 많이 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연금의 쓰임새도 각양각색이다.

“옷도 사 입고 반찬도 사고 그러지. 저축해둔 돈이 없는데 연금으로 공과금을 내니까 좋아.”(여제단씨)

“돈을 병원에 거의 다 갖다주지.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면 매달 30만~40만원 정도 들어. 난 무릎수술을 해서 돈이 더 많이 들어. 그나마 연금이 나와서 병원비에 보탬이 되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해.”(이용선씨)

이씨는 오른쪽 무릎을 보여준다.

구사마을 주민들은 95년부터 보험료를 내면서도 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김영조씨는 “당시 살림살이로는 돈(보험료)을 내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매달 연금을 받으니까 기분 좋지”라고 말한다. 강현기(65)씨는 “그 당시(1995년)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정부에서 내라고 해서 낸 거지”라고 회고한다.

여씨는 “요즘 연금을 못 받는 사람들은 우리가 연금 타는 것을 부러워하면서 ‘보험료를 넣을 걸’이라고 후회하고 있지”라고 한다.

국민연금공단 정읍지사 노기만 팀장은 “여느 농촌 마을처럼 구사마을도 농협에서 돈을 빌려 농사를 짓고 가을에 갚았다”면서 “그러다 연금을 받게 되면서 각종 공과금이나 병원비 등 기초생활비 걱정을 덜게 된 점을 주민들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전국에는 구사마을과 비슷한 연금마을이 더러 있다.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 원백산마을은 노인 35명 중 14명이 연금을 받고 있다. 대부분 자녀들이 도회지로 나가고 노인들만 살고 있다. 이 마을 이장 이강현(65)씨는 “내가 겪어보니까 예전에는 국민연금 그거 아무 도움도 안 될 거라고 봤는데 지금은 자식보다 더 효자라고 생각해. 아니 세상에 어느 아들딸들이 꼬박꼬박 돈을 넣어주겠나. 안 그래?”라고 말한다.

이씨는 연금에다 기초생활보장 생계비를 합쳐 매달 30만원이 들어오는데 아껴 쓰다 보면 남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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