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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육성이냐 규제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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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철수(金喆壽)상공자원부장관이 22일 기자들에게 『新산업정책은 내년 3월에 가서나 마무리 된다.그러나 개별 기업의 신규 사업 추진에 차질이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그 이전이라도 필요한조치는 그때 그때 취하겠다』는 뜻의 말을 한 것 은 한편으로는반갑고,한편으로는 서글프다.서글픈 것은 이런 말이 아직도 반갑게 들린다는 바로 그 점이다.병 주고 약 주는 사람에게 감사를바쳐야 할 때 느끼는 그런 서글픔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아직도 정부가 쌓아 놓은 두꺼운 규제(規制)의 벽 속에서 헤매고 있다.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한다는 新산업정책이 완성되기 전에는 개별기업의 대규모 신규사업은 허가할 수 없다고 심의마저 내쳐 온 것은 新산업정 책 그것이 또 하나의 커다란 규제로 들어앉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규제 완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무색케하는 새로운 규제로서 말이다.
산업정책이라는 것이 있어야만 할 이유가 있다면 대체로 그 9할은 산업활동을 육성하는 데에 비중이 실려야 한다.교육과 노동력의 질(質)을 향상시키는 일,사회간접자본시설을 확충하는 일 따위가 그것이다.만일 정부의 산업정책이 어떤 특정 산업에 중점을 두기로 작정한 것이라면,예를 들어 그 부문 산업을 위한 공업단지를 개발해 준다든지,특정 기술을 개발해 준다든지 하는 것이 산업활동 육성이다.산업정책의 나머지 1할이 육성 아닌 규제를 내용으로 삼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산업활동이 자칫 인명(人命),자연 환경,문화적 가치등을 손상.파괴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정도에나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중복(重複)투자라고 해서 그것을 정부가 규제해서는 안된다.우리 경제가 지향하는 시장,즉 경쟁의 마당은 어차피 국내가 아니라 세계다.과잉생산능력을 우려할 이유가 없다.더구나 중복투자가충분하게 있어야만 경쟁력을 기를 수 있고 슘페터 가 말한 「창조적 파괴」를 연출할 수 있음에랴.
재벌이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그들의 신규투자를 금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중소기업으로서는 일관 제철소.원자력발전소.자동차생산공장을 신규로 창업할 능력이 없다.이 국경 없는 경제 전쟁의 시대에 대기업이 재벌이라는 이유로 신규사업 진출이 금지된다면,한국 재벌 따위는 그 앞에 서면 너무도 작아지고 마는 외국의 초대형 다국적 기업만 국내 신규사업에 진출하라는 말인가.
업종전문화를 내세우는 것도 말이 안된다.현대그룹이 건설업에만전념하고 있었더라면 오늘날 한국(韓國)의 조선(造船)산업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삼성그룹이 모직업에만 남아 있었더라면 한국 반도체 산업의 오늘이 과연 있기나 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알만하다.
정부의 산업정책은 全행정서비스를 동원해 경제를 어떻게 하면 육성할 수 있을까 하는 방향에서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라야 한다.규제 위주로 짠 것이면 아무리「新」자가 앞에 붙어 있더라도 산업정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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