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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떠난 시인들, 일탈의 감미로움을 전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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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단순한 떠남이 아니다. 감미로운 일탈이다. 슬며시 틀을 벗어나 새로움을 들이키는 설렘의 여로다. 누구라도 그러할 터다. 하물며 ‘감성덩어리’ 시인이라면 그 가슴저림과 목마름을 일러 무엇할까. 시인 김경주·이병률이 자신들의 여행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이탈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는 존재하지 않죠. 그러나 모든 기차가 이탈을 꿈꾸고 있는 자들을 태우고 달리는 것만은 분명해요.”
『passport』의 저자 김경주에게 기차는 각별한 이미지다. “여행의 한 순간을 돌아보면, 새벽 기차에 몸을 실었을 때 텅 빈 객석들이 주는 호젓함과 그 농밀한 분위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할 만큼.

여름의 고비사막에서 겨울의 시베리아까지 걷고, 때로는 지프를 타고, 때론 기차에 몸을 실으면서 김 시인은 ‘인간이 지상을 유목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저 스스로 바람 속으로 떠나는 유배’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먼지나 욕조, 지도와 풍향계에서도 자신만의 언어를 지어낸다. 그 말마디는 친절하기는 커녕 입안 모래알처럼 까칠하다. 묘한 것은 그 까칠함이 거북스럽지 않을 뿐더러 거부할 수 없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다.

김경주 시인은 “여행을 통해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가장 섬세한 타인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을 것” 이라고 읊조린다. 모든 새로운 것과의 만남은 ‘자신과의 대화’ 에 침잠하기 위한 좋은 소도구라는 것이다. 대필 작가·카피라이터·극작가·시인 등 다양한 세계를 넘나들었던 김 시인의 산문은 독자로 하여금 여행의 주체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한 장의 사진이 때로 백 마디 말보다 진실함을 절감한다. 때로 모호하고 알기 힘든 에세이에 사진작가 전소연의 작품이 활력을 불어넣는다. 사진 없이 그의 글을 읽는다면 패스포트 없이 세계를 떠도는 여행자처럼 불안해질 것 같다.

또 한명의 시인이 있다. MBC FM ‘이소라의 음악도시’ 애청자라면 분명 시인 이병률과 그의 책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여행 산문집 『끌림』은 라디오 작가인 이병률이 1994년부터 2005년까지 170여 차례 비행기를 타고 50개국 200여 도시를 돌며 남긴 순간순간의 기록들을 책으로 엮은 살아있는 이야기다.
그 기록들에선 시인 이병률의 스물아홉에서 서른아홉까지의 시간이 엿보인다. 뚜렷한 목적이나 계산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가고 또 머물렀던 궤적을 통해 저자는 청춘의 목마름을 축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책은 목차나 페이지 따위의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시작도 끝도 없는 덕에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상관없다.

“내가 걸어온 길이 아름다워 보일 때까지 난 돌아오지 않을 거야.” 이 책에는 이병률 시인이 두 발을 내디뎠을 수많은 나라, 숱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담겨 있다.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우리는 결코 알 수가 없다’는 티베트의 속담에 몸서리치며 여행길을 재촉하는 이병률에게 여행은 생의 또 다른 이름이다. 두 시인의 여행기는 호기심 어린 눈보다 센티멘털한 가슴으로 읽어야 한층 어울릴 법하다.

문득 기차에서, 식당에서, 길에서, 낯선 이국땅에서 경험했던 기억의 편린들이 책의 내용과 오버랩되며 눈앞이 흐려질지도 모르겠다.

프리미엄 이송이 기자 song@joongang.co.kr
자료제공=랜덤하우스 / 02-3466-8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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