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국세청장이 검찰에 첫 소환된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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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군표 국세청장이 1일 오전 부산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현직 국세청장이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송봉근 기자]

1일 사상 처음으로 현직 국세청장을 불러 조사한 부산지검은 밤늦게까지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특수부가 있는 10층은 자정 넘어까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부산지검 수뇌부도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며 수시로 수사 상황을 보고받았다. 하지만 수사팀은 전군표 청장의 혐의 입증엔 자신감을 보였다. 정동민 부산지검 2차장검사는 "사법처리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본청 간부 4~5명과 부산지방국세청 직원 20여 명은 이날 오전 일찍부터 청사 주변에 대기하며 전군표 국세청장 출두를 지켜봤다. 1966년 국세청 개청 이래 처음 있는 현직 국세청장의 소환조사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검찰 조사가 서울행 항공권 예약시간인 오후 8시를 넘기자 "결국 사법처리가 되는 게 아니냐"며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전군표 청장은 이날 오전 10시52분쯤 관용차인 검은색 에쿠스 차량을 타고 부산지검 2층 현관에 도착했다. 당초 예정됐던 출두시간보다 50여 분 정도 늦었다. 전 청장 측이 방송사 중계차와 취재진 50여 명이 몰리자 청사 주변에 머물며 출두시간을 다시 조정했다고 한다. 전군표 청장은 기자들에게 "여러분 너무 빨리 나가지 말라.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언론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 청장은 정동민 차장검사와 차를 한 잔 마신 뒤 곧바로 10층 조사실로 올라가 조사를 받았다. 점심.저녁 식사도 수사 검사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4500원짜리 갈비탕을 시켜 먹었다.

◆변호사 2명의 조언 받아=검찰 관계자는 이날 오후 "전군표 청장에 대한 소환조사는 오늘 끝낸다. 재소환은 없다"고 밝혔다. 이날 조사를 끝으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을 내비친 것이다.

전군표 청장은 두 명의 변호사를 대동해 조사 과정에서 수시로 조언을 받았다. 전 청장은 민감한 질문이 나오면 변호사와 의논한 후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조서 문구를 토씨까지 꼼꼼히 살폈다고 한다. 전 청장은 상당히 성실하게 조사에 임했지만 혐의에 대해선 부인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전 청장은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인사청탁 대가로 지난해 8월 중순 1000만원, 9월 1000만원, 10월 2000만원, 11월 1000만원을 받고 올해 1월 미화 1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정 전 청장이 전달한 6000만원이 부산 건설업자 김상진(42.구속기소)씨로부터 지난해 8월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받은 1억원의 일부인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전군표 청장이 김씨의 세무조사 로비 사실을 구속된 정윤재(44)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통해 사전에 알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전군표 청장과 정윤재 전 비서관은 2003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각각 경제1분과 위원과 정무분과 위원으로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이병대 현 부산지방국세청장은 전날 "8월 초 전 청장이 '정윤재 비서관 이름이 나오면 국가적 망신이다. 안 나오면 좋겠다'고 말해 정상곤 전 청장을 접견해 '정치권에 준 게 있더라도 가슴에 묻어 달라'고 전했다"고 주장했다.

부산=정효식.천인성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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