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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흔들리는 한·미 동맹 바로 세워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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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노무현 정부는 실리보다 명분을 앞세운 감상적 자주론(自主論)의 함정에 빠져 한·미 동맹을 위험에 빠뜨렸다. 차기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한·미 동맹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가장 모범적인 동맹으로 평가받았던 한·미 동맹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급격히 약화돼 곳곳에서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체면 때문에 이혼을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미국 쪽에서는 한·미 양국의 차기 정부 출범을 계기로 동맹관계를 원점에서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차기 대통령은 전임자들의 실수를 거울 삼아 한·미 동맹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데 진력해야 한다.

 우선 우리는 한·미 동맹이나 양국 관계에 관한 신중한 언사(言辭)를 차기 대통령에게 주문한다. 노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수용 등 미국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서도 동맹국에 신뢰를 심어주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사려 깊지 못한 말 때문이었다. “반미(反美) 좀 하면 어때” “핵은 외부 위협에 대한 억제수단이란 북한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는 말은 대통령으로서 할 말이 아니었다. ‘동북아 균형자론’ ‘협력적 자주국방’ ‘친미자주’ 같은 실속 없는 구호성 개념어로 동맹관계에 혼란을 초래한 것도 실책이었다. 한·미 동맹의 요체는 국가안보다. 국가의 존립이 걸린 국가안보를 논하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는 천만금의 무게가 실려야 한다.

 한·미 동맹의 복원을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인식 차를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미국은 북한을 대량살상무기를 확산하는 실체적 위협이며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불량정권으로 보고 있다. 반면 한국은 북한을 도와줘야 할 가난한 이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더 이상 주적(主敵)이 아니다. 노 대통령에게 북한 핵은 안보적 위협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위협이고, 인권은 북한 체제의 특수성에서 접근할 문제로 보인다. 북한에 대한 인식 차를 좁히지 못한다면 대북정책의 엇박자는 계속될 수밖에 없고, 동맹관계의 틈새는 더욱 벌어지게 될 것이다.

 차기 대통령은 달라진 안보환경에 걸맞은 21세기 한·미 동맹의 전략적 비전을 새로 짜야 한다. 북핵 문제가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완전한 해결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핵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안보환경은 구조적 불안정성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더구나 중국은 경제대국과 군사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 국가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행보도 심상치 않다. 테러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은 글로벌 시대의 새로운 위협이다. 안보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한·미 동맹의 미래를 설계하고, 조정하는 것은 차기 대통령에게 부여된 역사적 책무가 될 것이다.

 차기 대통령은 임기 중인 2012년 4월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으로부터 이양받게 된다. 이양 시점의 안보환경을 재검토해 필요하다면 이양 시기를 조정할 수 있다는 열린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다원주의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한·미 두 나라의 자유무역협정(FTA)은 양국이 지향하는 포괄적 동맹의 상징이다. 미국이 빠진 한반도의 경제적 미래는 상상하기 어렵다.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에서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한·미 동맹보다 유용하고, 믿을 수 있는 틀은 없다. 미국 입장에서도 한·미 동맹은 동북아의 세력 균형과 안정 유지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동맹관계는 한번 깨지면 복구가 어렵다. 미국과 일본처럼 ‘신(新)안보선언’을 통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한·미 동맹의 청사진을 펼쳐보이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