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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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떠난 자와 남는 자(2) 『제 똥 구린 줄은 아무도 모르는 거네.구린 건 언제나 남의 똥이지.』 목뼈를 분질러 놓든 다리를 꺾어 놓든,그래야 할게 누구냐는 말에는대답이 없이 장씨가 딴소리를 했다.그리고 나서 그는 서 있던 태성이의 어깨를 잡아당겨 고서방과 함께 셋이 쭈그리고 앉았다.
방파제 위에서 또 경비원의 기침소리가 들려 왔다.
『세 놈이 아닐까 싶은데,문제는 세 놈을 한꺼번에 칠거냐 아니면 하나씩 손을 봐 나갈 거냐,그게 문제가 아닌가 싶다.』 태성이는 말이 없고,고서방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남의 소리하듯중얼거렸다.
『나야 뭐 비문비무(非文非武)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 『비산비야(非山非野)다 그말일세.이것도 저것도 다 좋다 그말이지.』 『이판에 문자 쓰냐? 이것도 사람새끼라고 내가 왜 동무를 하고 있나 모르겠다.』 『그보다 더 큰 거는 소문을 막는 거여.말이 먼저 새나갔다가는,약 한첩도 못 먹어보고 황천길이야.』 『거 하는 소리라고 첩첩산중이네.나도 문자 한번 쓰자.출구입이(出口入耳)라는 말도 몰라.나오는 입이 없는데 들을 귀가 어디 있냐.우리 셋만의 이야긴데 비밀이 샐 까닭이 없다.
』 방파제 뒤쪽에서 파도소리가 들려오며 바람이 마른 풀들을 흔들며 지나갔다.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장씨가 말했다.
『내 생각에는!』 목소리는 낮았지만 악문 이빨 사이를 비집고나오듯 장씨의 말에는 증오에 가까운 힘이 있었다.
『우선 조가 그놈이다.기무라 말이다.』 허긴 그놈은 이미 퉁이 나있는 놈이지.왜놈 뭐라도 빨고 있을 놈으로.태성이 고개를끄덕였다.
『그 다음에 의심가는 놈이 태길이다.』 『얼굴에 칼자죽 있는놈? 맞어.그놈도 한 통속인 것은 분명해.』 고서방도 한껏 목소리를 낮추면서 말했다.
『그런데 나는 말여,그 땅딸이 덕봉이 놈이 늘 의심스럽더라구.』 『설마 덕봉이가?』 태성이가 이마를 찌푸렸다.
『그놈은 그냥 미련한 놈 아냐? 여기 붙고 저기 붙고,간도 쓸개도 없는 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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