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미리보는명승부>마라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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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10월9일 오전10시.일순 팽팽한 긴장이 감돌던 히로시마스타디움은『땅…』하는 총소리와 동시에 환호성과 박수소리로 뒤덮였다.인간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톤….상당수 국가들이 포기,20여명만의 단출한 레이스다.
나리야마로터리(10㎞)부터 선두그룹과 후미그룹이 뚜렷해지더니홈센터아비타(20㎞)를 지날 때는 아예 따로 출발한 것 같았다. 30㎞지점 다이아몬드호텔앞.하야타 도시유키(일본)를 선두로黃永祚와 후강준(중국)이 뒤따랐다.
예상대로 韓.中.日 3파전.하야타(2시간10분37초)와 후(2시간10분27초)는 기록상 黃(2시간8분9초)보다 몇수 아래다. 그러나 변수많은 마라톤에서 왕년의 기록이란 어디까지나 장식품일 따름아닌가.
더욱이 일본은 주최국 프리미엄을 활용,덫을 깔아놓고 있었다.
스타디움을 나서자마자 시작되는 표고차 1백40여m,길이 8.2㎞의 급경사내리막은 짧은 보폭으로 초반스피드에 강한 하야타를 의식한 배려.
이후는 평평한 편도코스.어떻게든「후반의 변조」를 막아보자는 계략이다.
35㎞.하야타가 다시 피치를 올린다.黃이 따라붙는다.
후도 뒤질세라 걸음을 재촉한다.
5분여의 혼전.소강상태.잠시 잊었던 고통이 그 틈을 파고든다. 온몸이 욱신거린다.말그대로 마주오는 버스에 달려들고 싶을 정도다.달리는게 아니라 다리에 이끌려간다.
어느덧 결승점인 헤이와(平和)공원이 눈에 들어왔다.3㎞남짓.
黃이 곁을 훑어봤다.헉헉거리는 하야타.환각일까.
일장기 물결속에서 외롭게 출렁이는 태극기.
바르셀로나올림픽 결승테이프를 끊은뒤 쓰러지지만 않았다면 스타디움을 돌며 찢어져라 흔들고 싶었던 그 태극기다….
돌연 黃이 내달았다.내리막말미,20㎞지점에 이어 세번째 대공세다.하야타가 이를 악물지만 이번에는 힘에 부친다.뒤통수에 느껴지던 후의 거친 입김도 가늘어졌다.
계속되는 黃의 질주.사실 막판스퍼트는 그의 전매특허.올림픽우승도,20개월 공백끝에 나선 올4월 보스턴마라톤에서의 한국최고기록 수립도 그 덕분이 아니었던가.
헤이와공원을 한바퀴 돌고 平和의 門으로 치달았다.1초,2초,3초….마지막 한줌의 힘.고개를 질끈 하며 통과했다.
黃이 통과한것은 平和의 門만이 아니었다.魔의 2시간7분대 장벽.2시간7분54초! 보스턴기록이 또다시 15초 앞당겨진 것이다. 태극기를 흔들며 공원을 도는 순간 후강준과 하야타가 팔을늘어뜨린 채 들어서고 있었다.
〈鄭泰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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