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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을 즐겨라, 커피의 美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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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 23면

1. 진한 에스프레소와 75도의 우유로 창조하는 라테아트. 사진 중앙m&b

네덜란드에는 더치커피(Dutch coffee)라는 것이 있다. 가느다란 관에서 한 방울씩 떨어진 물이 원두를 덮은 종이를 적시면서 커피 액이 가늘게 추출되는 방법으로 한 잔의 커피를 만들기까지는 무려 7시간이 걸린다. 너무 심심한 나머지 방바닥을 파서 지구 반대편까지 터널을 뚫겠다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과연 이 커피를 마시려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이건 기네스북에 오른 별종 커피, 별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커피 메뉴고, 잘 가는 단골 카페의 바리스타에게 부탁한다면 서울에서도 충분히 맛볼 수 있다(가배두림 02-562-8326). 물론, 비싸다.

적은 돈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사치
모든 게 광속으로 내달리고 있는 요즘, 비즈니스 미팅에서 더치커피를 주문한다면 협상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휴식시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소중한 나를 위해, 누군가를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는 건 어떤 의미로든 가치 있는 일이니까.

2. 원두 구입의 첫 번째 원칙은 ‘신선함’이다.사진 중앙m&b

피에르 상소가 자신의 저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제안한 ‘한결같은 평안함을 보장해 주는 몇 가지 태도’ 중에는 ‘기다리기’가 포함돼 있다. 자유롭고 무한히 넓은 미래의 지평선을 향해 마음을 열어보는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눈을 감고 마음의 문을 명상의 세계로 열어놓는 차원 높은 ‘기다림’도 있겠지만, 원두커피 한 잔에 오감(五感)을 열고 시간을 음미하는 것이 평범한 우리에게는 더 의미 있고 행복한 휴식이 아닐까.

전 세계인들이 물 다음으로 많이 즐기는 음료인 커피에는 친숙하면서도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개성이 강한 맛과 향으로 육체와 영혼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매력 이외에 커피에는 여유, 만남, 대화, 사랑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생각해 보라. 누구도 이 네 가지를 즐기려 할 때 “물이나 한잔 할까?”라고 묻지 않는다.

행복한 휴식을 즐기고 싶어 하는 나에게, 또 누군가에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아날로그 방법으로 커피의 진정한 매력과 의미를 대접해 보자. 삶의 여유가 훨씬 직접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문학적 표현을 빌리자면 ‘적은 돈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사치’를 만끽할 수 있다. 물론 ‘커피 두 스푼, 설탕 두 스푼, 크림 두 스푼’의 인스턴트커피(다방 커피)에도 행복은 존재한다. 하지만 결이 다르다. 번갯불에 볶은 콩의 거친 표면과 장작불을 지펴 가마솥에서 지어낸 밥알의 매끈함이 다른 가치로 전달되는 것처럼.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보자.

커피는 신선한 원두와 물로 완성된다
한 잔의 커피를 직접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절차와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기본적으로 원두는 ‘신선한 것’이 최고다. 최상의 원두라고 꼽는 아라비카 종, 그중 백미인 블루 마운틴을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세계적으로도 상품은 소량이라 너무 비싸고(100g 정도에 50000원) 진품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커피 전문가들은 상품 카탈로그의 브랜드를 고를 게 아니라 볶은 지 3~7일 정도 되는 원두를 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원두를 갓 볶은 후에는 탄산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화점의 원두 판매 코너보다는 커피가 맛있기로 유명한 카페에서 구입하는 게 좋다. 내 입맛에 맞는 커피를 고를 수 있고 무엇보다 신선하다. 원두는 볶은 지 15일이 지나면 산화가 시작돼 맛과 향을 잃는다. 백화점은 그때그때 원두를 볶을 수 없으므로 15일이 지난 경우가 많다.

작은 그라인더를 하나 장만해 두면 커피 만들기가 훨씬 수월하고 즐거워진다. 그라인더는 원두를 분쇄하는 기계로 가격도 2만~3만원이면 충분하고, 무엇보다 나무 소재의 이것을 사용할 때의 기분이 꽤 괜찮다.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 때는 일정한 속도로 동일하게 힘을 주어 돌리는 게 포인트다. 어린 시절 연필깎이를 돌릴 때처럼 ‘드르륵 드르륵’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커피 가루 크기는 손잡이 부분의 장치로 조절할 수 있다.

물의 온도는 85~90도가 적당하다. 물이 끓었을 때가 100도. 이때 살짝 불을 줄여서 수면의 요동을 가라앉히되 뜨겁기는 유지시키는 정도가 적정 온도다. 그 가늠이 어렵다면 물이 팔팔 끓을 때 불을 끄고 5분 정도 두었다가 사용한다.

핸드 드립 : 물을 내리는 즐거움
종이 필터에 원두가루를 넣고 물을 통과시키는 핸드 드립 커피는 맑고 깨끗한 커피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준비물은 물을 거르는 여과지, 추출된 커피를 담는 유리 서버, 그리고 드리퍼(도자기, 플라스틱, 동 등 다양한 재질)다. 여과지의 아래, 위를 접어서 바닥과 벽에 잘 밀착되도록 드리퍼 안에 끼워 넣는다. 그라인더로 간 커피가루를 적당량(2잔 분량의 커피를 내릴 경우 300g 정도-드리퍼의 3/5 정도 높이) 담는다.

커피 전문가들이 핸드 드립 과정에서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원두 불리기’다. 미리 준비한 85~90도의 물을 조심스럽게 붓고 커피가루가 충분히 젖도록 30초 정도 ‘기다리는’ 과정이다. 첫 물을 받아들인 커피가루는 흰 거품과 함께 살짝 부풀어 올랐다가(고속 촬영으로 오븐 속 빵 굽기를 촬영할 때처럼) 내려앉는다. 이때 중심에서 바깥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천천히 물을 붓되, 절대 여과지에 물이 직접 닿지 않도록 주의한다. 여과지가 직접 빨아들인 물은 커피가루를 통과하지 않고 바로 밑으로 흘러서 커피 맛이 밍밍해진다. 드리퍼로 붓는 물줄기는 가늘수록 좋지만 초보자로서는 쉽지 않을 테니 처음에는 연필자루만한 굵기를 목표로 삼는 게 적당하다. 물줄기를 한 곳에 고정시켜 부으면 물이 닿는 부분에서만 커피 액이 추출돼 맛과 색이 흐려진다. 가능한 한 예쁜 달팽이 모양을 그리듯 커피가루에 골고루 물이 닿도록 한다.

프렌치 프레스 : 물을 누르는 즐거움
커피가루에 뜨거운 물을 붓고 커피 액이 우러날 때까지 3~4분 정도 ‘기다렸다’가 가루만 걸러내는 프렌치 프레스(‘보덤’이라고도 부른다)는 핸드 드립보다 사용이 훨씬 간편하다. 도구도 스타벅스나 커피빈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프렌치 프레스기 하나면 끝.

핸드 드립 때보다 조금 굵게 간 커피가루를 용기 바닥에 넣고 85~90도 정도의 물을 붓는다. 열을 뺏기지 않도록 쇠가 아닌 재질(나무젓가락 등)로 30초~1분 정도 용기 안을 거칠게 저은 후, 거름망이 달린 뚜껑을 닫아 둔다. 3~4분 정도 ‘기다렸다’가 거름망 피스톤을 아래로 천천히 누르면서 커피가루를 바닥에 가라앉힌다. 거름망의 밀도가 여과지만큼 곱지 않아 맑게 걸러낼 수는 없다. 하지만, 여과지와는 다르게 커피의 오일 성분이 그대로 남아 있어 유럽인들이 좋아하는 진하고 풍부한 커피 맛을 즐길 수 있다.

에스프레소 : 블렌딩의 즐거움
에스프레소 머신(퍼컬레이터)을 이용해 뜨거운 물과 센 압력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에스프레소는 설탕을 두 숟가락 정도 듬뿍 넣어서 두세 모금에 꿀떡꿀떡 삼키는 게 정석이다. 참고로 에스프레소를 유난히 즐기는 이탈리아에는 작은 잔의 바닥을 살짝 가리는 양의 진한 에스프레소인 ‘리스트레토’, 절반 정도 채운 일반적인 에스프레소, 한 잔 가득 채워 마시는 조금 가벼운 에스프레소인 ‘룽고’ 세 종류의 에스프레소가 있다.

커피에는 공식이 없다. 내 입맛에 맞는 게 가장 좋은 커피다. 그래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에스프레소(스트레이트 커피)에 술 또는 크림, 우유 등을 블렌딩해서 마시는 다양한 레서피가 존재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진한 에스프레소에 약간의 우유를 섞은 카페 마키아토, 반대로 우유에 소량의 에스프레소를 섞은 라테 마키아토, 가볍게 크림을 얹은 카페 콘 파나, 그라파라는 브랜드를 탄 카페 코레토 등을 즐긴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커피와 우유를 같은 비율로 섞은 멜랑제와 이 멜랑제에 부드러운 크림을 얹은 카푸치노를 좋아한다. 스트레이트 커피와 위스키를 3:2의 비율로 섞은 다음 갈색 설탕을 넣고 그 위에 생크림을 살짝 얹은 것이 아일랜드 사람들이 자랑하는 아이리시 커피다(절대 스푼으로 생크림과 커피를 섞지 말 것). 프랑스, 특히 노르망디 사람들은 그 유명한 사과주 칼바도스를 스트레이트 커피에 섞어 마시기를 즐긴다. 그럼, 이제부터 당신이 제조할 특별한 블렌딩 커피는?

도움말황유민(coffeeMBA 바리스타)
참고서적 『커피』창해ABC북, 『완벽한 한잔의 커피를 위하여』Mj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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