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책읽기] 다이어트 낙오자의 처절한 복수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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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알론소 꾸에또-1954년 페루 출생. 70년대에 스페인에 거주했으며, 미국 텍사스의 오스틴 대학에서 ‘카를로스 오네띠’를 연구했다. 『밤의 욕망(Deseo de noche)』, 『위대한 시선들(Grandes miradas)』, ‘에랄데 문학상(2005년)’을 수상한 『푸른 시간(La hora azu)』 등 장편소설과 여러 단편집을 발표했다. 현재 페루 리마에 살고 있다.

이 책은 두 여인의 해묵은 상처를 되살려내고, 그들의 상반된 삶과 내면을 양파껍질 벗기듯 하나하나씩 풀어내는, 남성이 여성의 속성을 현미경 대듯 들이댄 페미니즘 소설이다.

베로니까(주인공이자 내레이터)는 조용한 남편과 끔찍하게 아끼는 아들에다 내연의 연인까지 둔, 자신의 일과 현실에 만족해하는 미모의 40대 여성이다. 권위 있는 신문사의 국제부 기자인 그녀는 콜롬비아 취재를 다녀오던 도중, 비행기 안에서 고교 동기인 레베까를 만난다. 예전이나 다름없이 거대한, 고래를 연상하는 몸집의 레베까는 미혼에다 백만장자로 변해 있다.

25년 만의 우연한 재회. 그런데 두 사람의 만남이 어색하다 못해 수상하다. 베로니까는 썩 유쾌하지 못한 고교시절의 일을 떠올리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는 반면, 레베까는 다르다. 그날 이후, 고래 여인 레베까는 의도적으로 자신을 피하려 드는 베로니까의 주변을 집요하게 맴돌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이야기는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개된다.

도대체 두 여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레베까는 뚱뚱한 몸집 때문에 외톨이로 지내다 축제 때 급우들에게 결정적인 모욕을 당했고, 그녀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그들을 상대로 보복에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독자들은 다소 의아해할 것이다. 학창시절에, 혹은 사춘기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혹은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하는) 일을 갖고서 복수를 꿈꾸다니···. 하지만 레베까의 복수에 대한 일념은 끈질기다 못해 무시무시하다. 이 작품이 페미니즘을 넘어 싸늘한 두려움을 안겨주는, ‘공포심리소설’이란 장르로 분류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필 베로니까였을까.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레베까는 자신을 모욕했던 당사자들보다는 궁지에 처한 자신을 외면한 베로니까의 무관심 혹은 배타성을 추궁한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을 통해 독자는 레베까에게 남은 과거의 상처가 개인의 입장, 다시 말해 상대를 가해하는 쪽과 상대에게 당하는 쪽의 시각차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각각의 특성에 따라 다른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작가 알론소 꾸에또는 부모와 남편에게 억압받는 존재로 살아온 ‘여성의 세계는 위대한 문학적 테마’라고 정의한다. 그는 ‘남성들의 내적 세계보다 더 복잡하고 풍부한 여성의 내면성’에 주목하는 한편, 그들의 현실적인 주제, 즉 ‘완벽한 몸을 향한 맹목적 숭배’에서 이 작품의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현대사회에서 완벽한 몸매는 마지막 종교나 다름없으며,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는 그들의 종교가 추구하는 바이고, 이를 위해 몸매를 가꾸고 다이어트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떼로(Botero, 세계적인 콜롬비아 출신 조각가)의 인물들을 연상시키는 고래 여인 레베까는 현대사회의 희생물이자, 가치관이 왜곡된 사회를 비판하는 역설적인 메신저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모니터를 통해 PDF 파일을 읽는 불편을 감수하면서 어떤 때는 레베까의 입장에서, 어떤 때는 베로니까의 입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 작품에 눈을 떼지 않은 것은 예리한 메스로 여성(나아가 인간)의 심리를 해부하는 작가의 필력과 간만에 라틴아메리카의 이데올로기나 정체성 같은 무거운 테마에서 벗어난 해방감 때문이었으리라. 이 작품이 ‘쁠라네따-까사 데 아메리까 상’ 수상(본선 최종작이자 차석)에 머문 것은 여전히 무거운 그들의 현실 때문이었을까.

정창<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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