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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한식의 세계화 서두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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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60년대만 해도 스시(초밥)는 일본인만 먹는 지역음식이었다. 서양인들은 날 생선을 그대로 먹는 것을 야만인이 하는 행동쯤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이제 스시는 일본의 전통 고급문화라는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하며 세계적인 미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일식의 세계화가 저절로 됐을 리 없다. 우선 일본인들은 과감하게 젓가락을 던져 버렸다. 대신 손을 깨끗하게 씻고 스시를 맨손으로 집어 간장에 찍어 먹는 파격을 연출했다. 젓가락질이 서툰 외국인을 위해 젓가락 없이도 먹을 수 있는 스시를 창조해 낸 것이다. 식당은 위생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갈한 이미지를 부각시킨 뒤 일본의 전통적인 장식품으로 꾸몄다. 여기에 기모노를 입은 여종업원들의 복고적인 서비스를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오래지 않아 스시 식당은 단순한 밥집이 아니라 일본 문화가 담긴 일종의 문화코드요, 국가 브랜드 이미지로 세계인의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됐다. 이 같은 성공의 뒷면에는 자국의 음식 문화를 깊이 사랑한 일본 국민의 헌신적 참여와 정부의 적극적 후원, 그리고 기업들의 투자가 있었다.

한국 음식의 세계화 현장은 어떤가. 이탈리아 식당에서 1만원을 내고 먹는 수프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반면 육개장이 1만원이면 얼굴을 찡그리며 비싸다고 불평하기 십상이다. 천편일률적인 조리법에 길들어 조금만 조리법을 바꿔도 무조건 퓨전이라고 단정하거나 한식이 아니라고 매도해 버린다. 또한 한식은 무조건 값싸고 한 상에 차려 서민적인 술과 함께 해야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한식의 현주소가 아닐까?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 음식으로 외국 손님을 접대할 곳이 없다고 투덜댄다. 호텔에서 한식당이 거의 철수한 사실에 대해서는 자각조차 없다.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우선 계몽과 교육을 통해 우리 음식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워야 한다. 미국 레스토랑 협회나 런던에 본사를 둔 유로모니터 등 세계 유수 기관들은 한식을 웰빙 건강식으로 주목하고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국내에서는 우리 음식의 우수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예컨대 ‘규가쿠’라는 일식당에서는 한국 음식을 메뉴로 내놓고 자국화하는 작업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런데 그곳을 찾았던 한국인 중 혹자는 한류의 위력이 음식에까지 미쳤다고 감탄하고 있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한식문화의 산업화에 눈을 떠야 한다. 일본은 이미 ‘일식 인구 배증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현재의 전 세계 일식 인구를 6억 명에서 2010년까지 12억 명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중국도 국내총생산(GDP)의 13%를 차지하는 음식산업을 미래 10대 성장산업으로 지정, 육성하고 있다. 태국·인도·베트남 같은 나라도 마찬가지다.

세계 식품산업의 규모는 약 4800조원(외식산업 2400조원 포함)으로 추산된다. 이는 정보기술(IT) 분야(2750조원)나 자동차산업(1320조원)보다 큰 규모다. 2020년 세계의 중산층은 20억 명으로 예상된다. 이들을 고객으로 확보하기 위해 모든 나라가 투자와 경쟁을 하는 것은 생존의 차원에서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한국 음식문화의 세계화는 우리의 숙원 사업이다. 우리 음식을 세계화해 음식이 문화의 중심이 되고, 큰 이익을 창출하는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 기업의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참여도 필요하다. 특히 대기업은 자체 수요만으로도 수익을 창출해 낼 수 있으며, 그간의 세계화 경험에 식문화를 접목시켜 시너지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세계 시장에 대한 다양하고 풍부한 경영 경험과 인적·물적 네트워크, 그리고 강력한 자본을 바탕으로 하루바삐 기업은 한식문화 세계화 전략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정부 또한 선진 각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조속히 거시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조태권 광주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