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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유전쟁] 48. 유가공업계 불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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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최근 몇 년간 유가공산업이 위기를 맞았다. 우유 소비가 줄어든 것이 근본 원인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영양가보다 맛을 좇는 경향이 우리나라 식음료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유 소비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수입 자유화로 외제 분유.이유식이 대량 반입된 것도 국내 유가공산업의 불황을 부채질했다.

이와 함께 국산 전지분유의 대량 소비처였던 제과.제빵업체들이 값싼 수입 전지분유를 사용하는 바람에 유가공업체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유가공업체.목장은 하루 아침에 과잉생산의 덫에 걸려 구조조정을 강요당하는 궁지에 몰리게 됐다. 법원의 화의 결정 이후 회생의 발판을 다져가던 파스퇴르유업은 설상가상의 난관을 만난 것이었다.

고집스러운 파스퇴르의 고객들이 받쳐주어 어려운 시장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부 파스퇴르 제품의 매출액은 오히려 증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화의에서 벗어나 경영 정상화라는 고지에 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2년 여름, 권위 있는 한 식품영양학자가 우유의 살균 온도에 따른 칼슘의 변화에 대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유에 들어 있는 칼슘은 초고온멸균방식처럼 높은 온도로 가열하면 체내에서 칼슘을 소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비타민D가 대부분 파괴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유에 함유된 칼슘은 인체가 소화할 수 없는 물질이 되고 만다는 것이었다. 이는 내가 '우유전쟁'을 치르면서 가장 강조했던 얘기였다.

나는 용기를 얻었다. 회사 간부를 불러 의논했다.

"우리의 가장 큰 무기는 저온살균방식이다. 지난 몇 해 동안 부도와 화의 실행의 멍에 때문에 광고도 제대로 못하는 등 소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펴는 사이에 우유시장이 왜곡된 상태에서 굳어버리려 하고 있다. 이를 바로잡지 못하고 몇 백명 월급 주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려면 이 회사는 존립할 가치가 없다. 나는 다시 한 번 도전해 보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시 한 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하다가 잘못되면."

"그래도 우유산업은 발전할 것입니다."

"좋아."

나는 잘 아는 한 언론인과 이 일을 상의했다. 설명을 다 들은 그가 물었다.

"돈이 있습니까. 광고를 퍼부을 돈 말입니다."

"없지."

"언론이 떼 지어 공격해 오고, 각종 단체가 앞장서 파스퇴르의 작은 결함이라도 들춰내 침소봉대할 때 그로 인한 피해를 감수하고도 회사를 지탱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깊이 생각해 본 뒤 대답했다.

"어렵겠어."

"마지막으로, 기업이 당장 망해도 좋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결론을 말했다.

"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전쟁을 할 때가 아닙니다."

나는 그의 충고를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우유가 진실해질 때까지 내가 아닌 누가 이 일을 대신 맡아 '전쟁'을 계속할 것이다. 아니면 소비자들이 시장을 변화시키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최명재 파스퇴르유업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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