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낙천대상 선정 과연 공정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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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004 총선시민연대'가 공천 반대자 6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시민단체가 유권자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낙천.낙선 대상자 명단과 선정 사유를 공개하는 것이야 나무랄 수 없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한 상태여서 정당에 의한 일방통행식 정보만으론 미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선연대는 2백여개의 시민단체가 모여 상당한 대표성을 갖고 있는 만큼 정치적 성향에 좌우돼서는 안되며, 그 잣대가 고무줄이어서도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1차 발표 명단에는 문제가 있다.

우선 공정성에 흠결이 있다. 철새정치인을 문제삼으려 했으면 탈당 전력이 있는 행위자를 모두 적시했어야 했다. 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으로 간 사람들은 분당 차원이었다 치자. 지난해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합류한 5명의 의원은 왜 포함되지 않았는지 의아하다. 물론 총선연대는 "상습적.반복적 당적 변경 행위자를 선정했다"고 해명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2002년 11월 민주당을 탈당했다가 며칠 뒤 복당한 의원들은 그것만으로 낙천 대상자가 됐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붙인 '경선 불복'이란 '죄명'은 다소 무리해 보인다. 당사자들이 경선을 치른 게 아니라, 경선으로 선출된 대선 후보에게 불만을 품고 탈당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낙천 명단에 오른 현역 의원 비율이 민주당이 가장 높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총선연대 스스로 시비의 소지를 남긴 것이다.

'색깔론 발언'이란 기준도 이중 잣대가 아닌지 의문이다. '좌파 정권' 발언은 문제가 되고, '수구 꼴통' 발언은 괜찮다는 것인가. '호주제 폐지에 반대했다'는 정책적 판단을 낙천 사유로 든 것도 적절하지 않다. 이런 기준은 의원들의 소신있는 의정활동을 위축시켜 국익보다는 인기 영합주의에 흐르게 할 위험성이 있다.

낙천.낙선자 명단은 당사자의 정치생명과 직결돼 있다. 따라서 그 기준은 보편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시민단체라는 이름으로 특정 정파 봐주기나 덮어씌우기가 있어서는 안된다. 거짓과 진실이 섞여 혼란스러운 이때 일반 시민들의 현명한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