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교수의비즈니스협상학] 협상 꼬일 땐 술자리? 상대국 문화 따라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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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모든 협상은 정보 교환이 원활해야 한다. 그러려면 협상 당사자 간 인간적 친밀감을 형성하는 게 필수적이다. 친밀감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가 술자리를 갖는 것이다. 특히 중국이나 동남아 사람과 협상할 때 그렇다.

1990년대 초 중국과 이중과세방지 협상 에피소드를 예로 보자. 한국 대표단이 중국에 가 협상했는데 처음엔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첫날은 중국 측 환영 만찬, 다음날은 우리 측 답례 만찬으로 양측 대표단은 만취 상태가 되도록 술만 마셨다. 한국 대표단은 협상 진척이 없는 게 답답해 셋째 날 만찬 때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러자 다음날 아침 중국 대표단의 태도가 어쩐지 서먹했다.

이에 대해 현지 주재관이 귀띔했다. “어제 저녁 실수했다. 연이틀 흔쾌히 술을 마시다 갑자기 술을 안 마셨는데, 중국 측에선 이를 ‘관시(關係·관계)’를 거부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중국의 음주 문화를 모르고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한국 대표단은 다시 혀가 꼬부라지도록 술을 마셨다. 결국 중국을 떠나는 닷새째 협상은 성공적으로 타결됐다.

이처럼 협상이 꼬일 때 술자리를 가지면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맨정신엔 눈을 부라리는 노사협상도 일단 술잔을 주고받으면 마음의 문이 열리곤 한다.

그렇다면 모든 협상이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상대국 문화에 따라 다르다. 미국인과의 협상에서 술자리는 별 효과가 없다.

97년 자동차 시장 문제를 놓고 한·미 간 긴장이 고조됐을 당시다. 미 통상대표부(USTR)의 필립스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방한했다. 정부의 대미 통상팀은 그를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극진히 대접한 뒤 가라오케에 가서 팝송을 같이 불렀다. 인간적 관계 형성을 한 셈이다. 하지만 다음날 협상 테이블에서 그는 전혀 변한 것 없이 한국을 매몰차게 몰아붙였다.

‘인간적 관계와 업무 협상은 철저히 분리하라’. 미 대학에서 협상을 가르칠 때 가장 강조하는 말이다. 협상 때 술대접을 받으면 흔쾌히 어울리되, 그것 때문에 협상에서 따질 것을 제대로 따지지 못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안세영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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