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즐거운천자문] 【욕속부달】일을 빨리 하려고 하면 되레 이루지 못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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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케이블채널 tvN 송창의 대표는 두 가지 비공인 기록 보유자다. 예능프로 최고 시청률을 달성한 PD, 그리고 방송위원회에 ‘안 좋은 일’로 가장 많이 불려 간 PD. 그가 만든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20년째 방송 중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첫 PD, ‘몰래 카메라’라는 말을 만든 것도 그였다. ‘남자 셋 여자 셋’ ‘세 친구’ 등의 인기 시트콤도 연출했다. 한마디로 TV 오락의 개척자요, 예능의 선구자다. 오랜 기간 옆자리에서 지켜본 나는 ‘창의적’이라는 용어를 쓸 때마다 그의 얼굴이 겹쳐서 떠오를 정도다.

이름값 제대로 해 온 그에게 지난 한 주는 시련의 나날이었다. 20일 tvN 개국 1주년 파티에서 케이블 승전보를 전해야 할 대표선수가 기자들 앞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반성문을 읽어야 했다. 전날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죄인?)으로 등장했던 장면의 연장선상이다.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 등 tvN의 선정적 프로가 도마에 올랐다.

시청자를 즐겁게 해 준 공으로 상을 받아야 할 그가 주눅이 든 태도로 잘못을 시인하는 모습을 보며 전·현직 예능PD들의 심정 역시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선정성으로만 따지자면 TV 뉴스도 결코 덜하지 않다. 지금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무한도전’ 역시 가장 많은 심의제재를 받고 있는 걸 보면 예능프로가 만만한 대상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뜬금없는 얘기 같지만 건강한 사람은 하루에도 방귀를 몇 번씩 뀐다. 하지만 오락프로에 방귀가 등장한 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송 대표가 만든 프로에 처음 방귀 소리가 등장했을 때 미간을 찌푸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코미디를 넘어 드라마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소재다.

굳이 TV에서 방귀 냄새까지 맡을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반대 신문에도 응해야 한다. 방귀는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그걸 TV라고 해서 굳이 숨길 이유는 또 뭐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뉴스나 드라마 속의 스캔들은 괜찮은데 왜 이른바 페이크 다큐멘터리 속 ‘스캔들’은 문제가 되느냐는 데까지 진도가 나아갈지도 모른다.

변론하자면 송창의는 정의를 구현하는 데 앞장서 온 사람이 아니라 자유를 확장하는 데 깃발 든 사람이다. 다만 대중문화 현장에서 반 발짝 앞서 가면 박수를 받는데 이번에는 한 발짝 앞서 간 죄(?)로 사과를 한 형국이 되고 말았다. 본인 스스로 개국 초기 의욕적으로 일을 하려는 조급증 때문에 도가 지나친 감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수준이 아니라 수위 조절이 문제가 되는 게 텔레비전 오락이다. 공중파건 케이블이건 핵심은 자유로운 상상력이다. 하지만 상상력이 설득력과 부딪힐 때 살아남지 않으면 그 상상은 망상이나 몽상으로 간주된다. 망상력이나 몽상력은 사전에도 없다. 오직 상상력만이 살아남아 고단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넨다.

주철환 OBS 경인TV 사장·전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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