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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맛 고장'서 한식의 세계화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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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판타스틱(fantastic.황홀한)' '고저스(gorgeous.찬란한)' '어메이징(amazing.놀랄 만한)' '뷰티풀(beautiful.멋진)'…. 어떤 이는 '버스팅(bursting.터질 것 같은)'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고요한 밤하늘에 19일 밤 한국 음식 맛을 극찬하는 형용사들이 울려 퍼졌다. 나파밸리는 미국의 최고급 와인과 고품격 식사문화가 응집돼 있는 곳. '한국 식문화 전도사'를 자임하는 광주요그룹의 조태권(59) 회장이 미국 식문화를 선도하는 이 지역 유지 50여 명을 초대해 선보인 한식 밥상에 대한 반응이다.

조 회장은 "한국 음식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긍정적으로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드디어 우리의 숙원 중 하나인 한식 세계화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날 식탁에 오른 음식은 한식에 포인트를 둔 다섯 가지 코스의 퓨전 메뉴. 조 회장이 서울에서 운영 중인 한식당 가온의 요리에 미국인 입맛을 고려해 만들었다. 광주요에서 만든 최고급 도자기 식기와 식재료도 한 컨테이너나 들여왔다. 요리사와 직원 10여 명도 함께 왔다.

오후 7시 정각 마을회관 격인 '나파밸리 리저브'에 식탁이 차려졌다. 한국에서 가져온 테이블보, 음식을 소개하는 설명서, 예쁜 도자기 그릇과 가지런히 놓인 수저를 본 초대 손님들은 한껏 기대에 부푼 표정이었다.

19일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열린 .한국 음식과 문화의 밤.행사에 참석한 할란 와이너리의 돈 위버 사장 부부(左)가 광주요 조태권 회장이 제공한 한식 요리를 맛보고 있다. [나파밸리=이원영 기자]


애피타이저 겸 첫 요리는 '생선회 샐러드'. 큰 흰색 도자기 그릇에 담긴 수북한 얼음에 광어회가 몇 점 놓였다. 포인트는 미국인의 입맛을 고려해 순하게 만든 초고추장. '패러다임 와이너리'에서 와인 메이커로 일하는 앤 캐머런은 "살짝 매운맛에 달짝지근하고 톡 쏘는 신맛이 일품"이라며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 다음은 '랍스터 떡볶음'과 게살.김치.생선을 이용한 '삼색전'으로 이어졌다. 서툰 젓가락질이지만 포크를 거부하고 열심히 입으로 옮겨 넣는다. 그래도 오물거리는 입 모양엔 거부감보단 행복감이 가득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레드와인을 곁들였다. '젬스톤 와이너리' 폴 프랭크 사장 부부는 "와인과 썩 잘 어울린다. 이런 식당이 있으면 여러 친구에게 권하겠다"고 말했다.

네 번째는 '등심구이'. 식지 않도록 따뜻하게 데운 도자기에 올렸다. 양도 부담되지 않을 정도로 서너 조각을 담았다. 여기에 하얀 백김치를 내놨다. '김치=빨강.매운맛'의 등식을 파괴한 것. 참석자들은 입에 맞는지 접시를 싹싹 비웠다. 빈 접시를 나르는 직원들의 발걸음도 흥겨웠다.

홍삼과 전복을 넣어 만든 '홍계탕죽'으로 마무리하고, 후식으론 잣과 밤을 활용한 밤초와 조 회장 가문에서 만든 약차를 냈다.

음식을 맛본 하이테크 사업가 톰 본 칼은 "이런 음식을 만들어 내는 레스토랑이 있다면 투자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 음식이 미국인 입에도 이렇게 맞는 줄 몰랐다. 이 정도라면 오늘 날짜로 한국의 명예 국민으로 등록하겠다." 이어진 할란 와이너리 돈 위버 사장의 말에 행사장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나파밸리(미 캘리포니아주)=이원영 미주중앙일보 기자

◆나파밸리=이상적인 기후 조건으로 와이너리 400여 개가 산재한 미국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지.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대규모 자본과 우수한 제품 개발로 '나파밸리 와인'은 후발주자이면서도 세계적 명품을 생산해내며 유럽 와인을 위협하고 있다. 재력가들이 와이너리를 운영하면서 노후 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꿈의 도시로 꼽히며, 최상류층 인사들이 최고급 식도락을 즐기는 곳으로 유명하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유명 식당 리스트에 여러 곳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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