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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6자회담 재개 발표] 리비아 核포기에 입지 축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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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방송이 6자(남북, 미.일.중.러)회담 25일 개최를 보도한 시각은 남북 장관급회담 북측 대표단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기 40분여 전이었다. 그 순간 장관급회담에서 북측에 회담 참가를 촉구하려던 정부 관계자들은 한숨을 돌렸다. 동시에 북한의 요구 리스트가 길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북한 발표 1시간30분 후에 중국 외교부는 회담 개최를 공식 발표했다. 북한의 발표 시간대에는 남북 관계에 대한 계산과 '회담 일정을 우리가 결정했다'는 뜻도 담겨 있는 셈이다.

2차 6자회담이 25일로 잡힌 것은 북핵의 대화 해결 모멘텀을 유지할 수 있게 된 데 큰 의미가 있다. 지난 8월 이래 반년 만에 회담이 재개되면서 6자회담의 명맥을 잇게 된 것이다. 한.미.일 3국은 그동안 이달 안에 회담이 열리지 않으면 6자회담 틀 자체가 깨질 것으로 우려해왔다. 북한이 지난달 초 방북한 미국 민간대표단에 핵무기 제조 원료인 플루토늄을 보여준 점 등을 감안하면 체감위기 지수도 한 단계 내려갔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회담에 나온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얽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이다. 북한으로선 나머지 참가국이 최근 셔틀 외교(그림 참조)를 통해 회담 참가를 촉구한 점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리비아의 일방적 대량살상무기 포기, 이란의 핵사찰 수용에 따라 워싱턴의 대북 기류가 강경해지고 있는 점을 저울질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올 들어 미국내 대북 문제에서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의 입지가 커졌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전한다.

여기에 리비아.이란의 탈(脫)대량살상무기 움직임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요인이 됐다는 얘기들이다. 파키스탄이 북한에 핵무기 제조 기술을 전달했다고 미국에 통보한 것도 북한의 선택을 좁힌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의 압박과 외교적 고립을 벗어나기 위해 회담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들이다.

둘째는 중국 역할론이다. 1차 회담에 이어 이번에도 중국은 북.미간 중재역으로 동분서주했다. 왕자루이 (王家瑞)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지난달 방북은 2차 6자회담 개최의 다리를 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대(對)한.미.일 관계 개선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는 남북 관계에 대한 고려다. 6자회담에 나오지 않을 경우 남한의 대북 지원과 남북 경협 활성화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 남북 경협은 북한의 유일한 탈출구다.

2차회담이 열린다고 해서 북핵 문제 해결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보인다. 핵 폐기 방법과 대북 경제, 에너지 지원에 대한 북.미간 입장차가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은 미국이 증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HEU)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2차 6자회담은 북핵 문제의 '대타협이냐, 파국이냐'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오영환 기자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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