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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튀는 신세대 경영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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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흥시장의 CEO들 과거 점잖던 ‘사장님’과는 달리 드러내놓고 자랑하기 즐긴다

뉴스위크휴대전화와 전자제품 전문체인점 에브로셋을 운영하는 예브게니 치츠바르킨은 대부분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즐기는 정장 차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난해 런던에서 개최된 러시아 경제 관련 회의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한 그는 찢어진 청바지에 붉은 가죽점퍼를 입고 있었다. 러시아 제3위의 소매점 체인회사 에브로셋의 지난해 매출은 46억2000만 달러였으며 12개국에서 5200개의 점포를 운영한다.

옛 소련 시절의 국영기업을 불하 받아 배를 불린 러시아의 신흥재벌들과는 달리 치츠바르킨은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자신의 성공을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과거 이 나라에는 우리 같은 회사가 없었다. 내 밑에 종업원이 3만7000명인데, 나는 과거 러시아 기업들이 하던 방식과는 다르게 그들을 이끈다. 내 논리는 간단하다. 돈을 벌어라, 그리고 옆 사람에게 돈 버는 방법을 가르쳐라.”

치츠바르킨은 신흥시장 경제가 배출한 인물로, 요즘 이들과 같은 경제계 인사들은 유명 인사로 각광 받는다. 과거 이들의 선배들은 신변안전을 위해서나 불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피하려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들 신흥 CEO들은 다르다.

인도 제일의 주류업자이며 억만장자인 비자이 말리아는 곳곳에 저택이 25채이고, 전용 제트기 세 대에 헬리콥터가 두 대라는 사실을 자랑한다. 그는 5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캐주얼 셔츠 단추를 가운데까지 풀어 헤치고 금목걸이를 과시한다.

신흥시장에는 마이클 블룸버그 같은 인사도 많다. 사업으로 얻은 지명도를 적절히 활용하는 사람들이다. 마우리시우 마크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아르헨티나의 SOCMA 그룹 창업자의 아들인 그는 유명 축구단 보카 주니어스의 사장직을 발판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에 당선됐다.

점차 명성을 더해 가는 이들 돈 많은 기업계 인사는 그들의 국가에서 일어난 수많은 지각변동의 산물이다. 중앙통제경제의 종말, 자본주의의 등장, 서구식 기업가정신과 일정 정도의 실적주의 도입 등이다. 치츠바르킨처럼 젊은 층에 속하는 인사들은 이런 정치적 변화를 반영해 이른바 세계화 시대의 낙오자들을 경멸한다. “가난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가난한 사람은 멍청이다.”

이들 신흥 부호들은 빈자(貧者)를 경멸하지만 중산층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데는 적극적이다. 1987년 리카르도 살리나스 플리에고가 가업(家業)인 가전제품 체인업체 엘렉트라의 CEO에 취임할 당시 회사는 거의 파산 지경이었다. 프랑스 디자이너의 안경과 축구스타의 덥수룩한 턱수염으로 멋진 이미지 연출에 공을 들이는 그는 59개에 불과하던 체인점을 7개국 1700개로 늘렸다.

회사의 이 같은 성장은 살리나스 플리에고(현재 멕시코의 셋째 부자이며, 최근 빌 게이츠를 추월한 카를로스 슬림이 멕시코 최고 부자다)가 설립한 방코 아즈테카의 성공 때문이다. 5년 전 문을 연 이 은행은 멕시코의 근로계층과 중하위층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소비자 금융회사다. 인도의 비자이 말리아가 이끄는 회사도 중산층의 성장 덕을 톡톡히 봤다.

그는 방갈로르 사교계의 명사이며 그가 소유한 킹피셔 맥주 회사의 광고용 달력에 등장하는 수영복 모델과 데이트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한다. 그가 가십 기사에 등장하는 것은 계산된 행동이다. 이제는 인도에도 수백만 명이 말리아처럼 부자는 아니지만 그의 회사에서 생산되는 맥주를 마시거나 킹피셔 항공의 일반석 항공권은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리아의 스타일이 정장 차림의 전형적인 인도 기업인 모습은 아니지만, 그는 15년간의 개혁으로 인도 정부와 대기업 간의 밀월관계가 종식되면서 부를 획득하는 길은 많아졌다는 점을 실증한다. 말리아의 성공은 관료주의 수레바퀴에 기름칠하는 능력이 아니라 이재 능력과 마케팅 수완 때문이다.

살리나스 플리에고도 자신이 기존의 개도국 재계 실력자들과는 다른 신세대 경영자라고 여긴다. “20~30년 혹은 40년 전의 기업인들은 정부의 특혜에 의지했지만 현재 우리는 멕시코의 중산층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현재 51세인 그는 자신이 소유한 이동통신회사 부채의 처리 문제와 관련된 부정 혐의로 2005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의해 고발돼 배상금과 보상금으로 연방정부에 약 750만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그는 자기 소유의 아즈테카 TV를 동원해 정부 각료, 소속을 바꾼 팝 스타 등 자신의 적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그래도 예전 기업 경영자들보다는 대체적으로 나은 편이다. 방코 아즈테카를 성공한 기업사례로 소개하는 제리 할 플로리다 국제대 경영학 교수는 “세계 제일의 청렴결백한 인물은 아니지만 농촌과 근로계층 멕시코인들을 소비자층으로 유도하려 한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개발도상국들은 아직도 ‘부패척결’ 식의 기업운동을 펼치지만 신세대 CEO들은 성공, 혁신, 경제발전에 관한 관념을 바꿔나간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불법 복제가 최대 성장산업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전자상거래회사 alibaba.com의 창업자 잭 마는 독자적인 가치를 창조하려는 젊은 혁신가 세대에 속한다.

마는 중국판 세르게이 브린(구글의 공동 창업자)으로 간주된다. 그는 1999년 항저우(杭州) 아파트에서 alibaba.com을 출범시켰다. 이 회사는 불과 2년 만에 세계 최대의 기업 간 전자상거래 사이트로 발전해 중국시장에서는 이베이를 능가한다. 이와 관련해 칭화(淸華)대 경제학과 장양푸 교수는 이렇게 평가했다.

“중국에는 신제품 개발의 열의가 없다. 같은 물건을 적은 비용에 만들어 싸게 팔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그런 고생을 하느냐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잭 마는 사고의 틀을 모방에서 혁신으로 바꿨다. 그리고 그것은 기술의 연구·개발에 관한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개발도상국의 신세대 경제 지도자들은 장차 정치에서도 큰 역할을 담당할 전망이다. 코카콜라사 중역 출신인 비센테 폭스 멕시코 전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에콰도르의 바나나왕 알바로 노보아, 칠레의 항공사 소유주 세바스찬 피네라는 2006년 대통령선거 2차 결선투표에서 실패하긴 했지만 강력한 후보로 등장했었다.

그들의 선전은 사업의 성공이 유권자들의 호감을 샀다는 점을 보여준다. 과거 이 지역에서 부(富)는 부패와 동일시됐으며, 기업인이 선출 공직에 출마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마크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은 “기업을 창업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국가의 미래에 관한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훌륭한 목표이긴 하지만 신흥 기업가들 모두가 그런 길을 택하지는 못한다. 러시아의 치츠바르킨은 최근 다소 외국인 혐오를 드러내는 깜짝쇼를 연출했다. 직원들이 “사장이 경멸하는 화폐를 밟고 다니도록” 본사 건물 한 동의 바닥을 유로화로 뒤덮었다. 그는 외교관은 아니지만 언론의 시선을 끄는 법은 안다.

With OWEN MATTHEWS in Moscow, JASON OVERDORF in Delhi and QUINDLEN KROVATIN in Beijing

JOSEPH CONTRERA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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