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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독립군도 전범 이란 궤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三國志』에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친다」는 말이 나온다. 안타깝고 부끄러운 얘기지만 金日成의 장례식이 치러진 19일 우리 사회의 모습은 바로 이 중달의 고사를 떠올리게 하는것이었다.金日成과 제갈공명을 동격으로 비유하는 건 애초에 말이안되지만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우리사회는 마치 중달 처럼 허둥거리며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19일 우리사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한번 돌이켜보자.
한총련대학생들은 장례식 하루전인 18일 전국대학에서 집회를 갖고 金日成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검은띠를 단 플래카드를 내걸겠다고 밝혔고 19일 전국 23개대학에선 애도 현수막과 대자보가나붙었다.
『金日成주석의 사망에 대해 민족화합의 대의로서 애도를 표합니다』『金日成 주석이 자신의 영토를 지키기위해 무력을 동반한 것이 전범이라면 일제에 항거한 독립군도 역시 전범이다.』 학생들이 전개한 논리들이다.『그렇게까지 해도 되는거냐』 는 여론이 비등하자 서총련과 남총련은 19일오후『정부탄압의 빌미를 주지않기 위해 플래카드를 내걸거나 조문집회를 갖지 않겠다』며 발을 뺐지만 운동권학생들이 어떤 정서를 갖고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는 불문가지였다.
『운동권 학생들이 金正日의 지령을 받고있다』는 서강대 朴弘총장의 발언이 있은뒤 19일 오후 民家協 회원들이 학교로 찾아가朴총장과 가시돋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朴총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나서고 朴총장의 관사습격 첩보가 입수됨에 따라 경찰은 이날밤 총장관사에 경비경찰을 내보내야 했다.
그러나 남쪽이 온통 뒤숭숭한채로 하루를 보내는 동안 북한에선金日成 장례식이 2백만명의 평양시민들이 땅을 치고 통곡하는 가운데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金日成 장례식은 북한주민들을 단합시키는 행사가 됐고 남에서는내부분열과 반목이 불거지는 계기가 된 셈이다.
우리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는 과연 무엇이고 가야할 방향은 어디인가. 金日成 장례식을 놓고 허둥대는 남쪽의 정치인.언론.학생들 모두가 다시한번 자문해 보아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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