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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주민 통곡장면 보며「벽」실감/신세대가 보는 북한­김일성 좌담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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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기성세대 「조문문제」 원칙없이 우왕좌왕/객관적 정보부재가 북에 대한 호감 불러
김일성 사망 소식이 전해진 후 북한에 대한 관심이 전에 없이 높아졌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이야기들은 6·25 등 아픈 과거에 역사의 상흔을 잊지 못하는 주장이 대부분이다. 과연 신세대들은 북한과 김일성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김일성의 죽음은 김일성과 북한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 여기 여섯명의 젊은이가 모여 그들의 생각을 숨김없이 털어 놓는다. 이들의 생각은 젊은 대학생들의 의견 일부를 보여주는 것으로 신세대가 갖는 대북한관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편집자주>
『김일성이 죽었다고 뭐 별로 달라지는 것이 있나요.』 이들에게 김일성의 죽음 자체는「강건너 불」이었다.정작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은 김일성 죽음 이후 신문과 방송을 통해 쏟아져 나온 북한관련 정보들.TV에 생생히 비춰지던 북한의 모습은 이들이 그동안 머릿속에 그려왔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것이었다.귀가 닳도록 들어온「지독히 못사는 나라」「굶는 사람들」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북한이 외부에 공개한 것이니만큼 「광고」를 위해「특수제작」됐을 것이라는 데는 이들도 이견을 갖지 않는다.하지만 이들은 학교교육에 배신감마저 느낀 듯하다.이를 두고 이민영양(23·연세대 3년)은『지금와서 생각하니 학교에서의 반공교육도 일종의 세뇌교육이었던것 같아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고 했다.
○학교교육에 배신감
뿐만 아니라 김일성의 항일투쟁등「완전날조」라고만 몰아붙였던 것이 어느 정도 사실로 밝혀지면서 김일성에 대한 호기심도 상당히 커졌다.물론 호기심의 대상에 적개심을 품을 수는 없는 일.김범석군(21·미 프라트대 유학중)은『기존의 제한 되고 변형됐던 정보에 대한 불신감 때문에 젊은이들이 김일성에 대해 필요 이상의 호감을 갖게 되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사실 이들은 김일성이 죽기전에도 6·25를 겪은 세대들과는 달리 그를 「철천지 원수」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이들에게 있어 김일성은 그저 「그런 사람이 있나 보다」고 여기는 정도의 인물이었다. 황정혜양(22·이화여대 3년)은『김일성의 죽음을 두고 세상이 그렇게 떠들썩한데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느냐』고 말한다.결국 이들에게 김일성에 대한 관심을 선사한 사람은 다름아닌 기성세대인 것이다.여기에 북한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감추려했던 과거 정권들의 노력이 겹쳐「관심」을「호감」으로 쉽게 바꿀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들은 김일성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가 기성세대의 그것보다 훨씬「객관적」이라고 주장한다.6·25를 겪으며 김일성에 대한 원한이 사무친 사람들은 다분히「감정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성세대 “감정적”
도대체 그들의 「객관적」인 인식은 어떤 것인가.이들은 일단 김일성에 대해「좋은 사람,나쁜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은 사양한다.이같은 유보에도 그동안의 반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크게 작용한 듯하다.
대신 그들은「어쨌든 김일성이 똑똑한 사람임은 틀림없는 모양」이라고 말한다.50년이라는 세월동안 한나라를 휘어잡다가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편안히 세상을 뜬 독재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이런 재주를 피울 정도라면「상당한 사람」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
야당이 조문 얘기를 꺼냈다가 뒷수습에 진땀을 빼고 있지만 이런 상황도 이들에겐 못마땅하게 비친다.물론 그가 역사의 죄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뚱해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6·25의 피맺힌 한을 안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다.
이들은『왜 일본의 히로히토 왕이 사망했을 때는 조문을 갔느냐』고 반문한다.김은경양(21·서울대4년)은 『실리와 명분의 선택에 있어 정부는 물론 기성세대 모두가 원칙없이 우왕좌왕하는 것 같다』고 따끔한 한마디를 던진다.
이들은 남·북관계에 있어 우리가「형님」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아우가 형에게서 사탕하나 뺏어먹는다고 난리를 쳐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서정태군(21·홍익대 2년)은 한발 더 나아가『아우에게 사탕하나 뺏어먹을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하 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이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조문은 「형님으로서의 도량을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또한 이들에게 있어 조문 발언을 규탄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북한에게로 한발 더 가까이 가는 것을 막는「걸림돌」로까지 비친다.
황정혜양은 『우리의 이런 생각에 대해 기성세대들은「아무것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북한의 책략에 놀아나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며 기성세대의「고정관념」에 대한 불만을 풀어 놓는다.
○「형님」의 도량 아쉬워
통일에 대한 이들의 생각은 몹시 다양하다.서군은『통일이 되면 군비경쟁등에 들이던 막대한 돈과 인력을 다른 일에 돌려 훨씬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고 통일이 이뤄져야하는 이유를 설명한다.또한『통일이 되면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며 보다 자신의 피부에 와닿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통일후의 사회에 대한 이들의 생각이 희망적이지만은 않다.이들에게 가장 크게 우려를 심어준 것은 평양 시민들의 통곡 장면.이주형군(23·서울대 대학원 1년)은『마치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들을보는 것 같았다』고 소감을 말하며『50년 동안의 신격화 작업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도 있지만 과연 그들과 이야기가 통할지 의문』이라고 했다.또한 이민영양은『북한 사람들과 만나기가 겁난다』고까지 말한다.
○알권리 보장돼야
그렇다면 이런 벽을 허무는 길은 무얼까.이에 대한 이들의 대답도「형님론」과 무관하지 않다.극도로 폐쇄된 체제속에서 생활하는 저들에게 밖의 세상을 알릴 수는 없는일.따라서 우리가 저들을 철저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가 북한을 이해하기 위한 정보들이 과거처럼 일부에 의해 여과된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판단은 국민 개개인에게 맡기고 언론사등 정보기관은 단지 보다많은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기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범석군은『이렇게 해야 통일에 대한 보다 넓은 의견이 수렴될수 있고,또 이번과 같이 급격한 대북한관의 변화로 인해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감이 조성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정리=채규진·양성철·권혁주기자>
□참석자
김은경(21·서울대 식품영양학과4년)
서정태(21·홍익대 무역학과2년)
이민영(23·연세대 신문방송학과3년)
황정혜(22·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3년)
김범석(21·New York Pratt Institute재학)
이주형(23·서울대 대학원 물리학과 석사과정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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