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에서화합으로>5.끝.경쟁력 있는 협조관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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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노사분규가 극심했던 80년대말 노동부내 노사정책실의 몇몇 뜻있는 직원들은 노사관계를 근본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한 특별법 도입 방안을 연구하고 있었다.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극단적 노사관계와 공권력에 의존한 정부의 경직된 해결방식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자발적인 움직임이었다.가칭「산업평화특별법」으로 명명된 이 법은 노사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을 담은 것이었다.
이 법에 따르면 정부는 노사분규 발생 업체의 사업주로부터 분담금을 거둬 임의 중재인단 운영기금을 조성한다.사회 지도층 인사들로 구성된 임의 중재인단은 노동위원회가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노사분규의 알선.조정을 연중 수행한다.
특별한 상황이 벌어지면 노동부차관이 위원장이 되고 정부내 각부처의 차관이 위원이 되는 노동부 주도의 대책위원회가 자동적으로 설치돼 汎정부차원에서 사태의 악화.확산을 방지하고 근본적인처방을 내리게 된다.
이 계획은 노동행정의 자주성 실현이라는 많은 전문가들의 간절한 바람을 반영한 것이었지만 시대 분위기 때문에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한채 잊혀지고 말았다.
이 방안은 노동행정의 자주성을 희구하는 노동부 관료조직의 입장을 많이 드러낸 것이기는 하지만 노동행정이 외부요인에 휘둘려온 것은 사실이다.
노동계에서는 지난해 李仁濟장관의 도중하차를 노동행정의 자주성과 관련해 노동부가 겪은 상징적인 좌절로 받아들이고 있다.
李장관은 취임 초기『지금까지 산업평화가 정착되지 않고 파행적노사관계가 지속된 것은 노동자들보다 사용자쪽에 더 큰 책임이 있다.앞으로 사용자 편을 드는 것 같은 노동행정은 근절하겠다』고 선언했다.
노사관계에 있어서의 민주적이고 미래지향 적인 패러다임을 기대한것은 노동계뿐만 아니었다.노동행정에 오래토록 종사해온 관료들도 문민정부하에서 근본적인 노동개혁 시기가 온것으로 받아들였었다. 한국자보의 부당노동 행위에 대한 특별근로감독과 그룹회장에대한 소환조사,해고자의 일괄 복직방침,대법원 판례와 어긋난 노동부 행정지침의 정비,인사경영권의 단체교섭사항 인정,현총련 총파업에 대한 자율교섭의 강조….
李장관은 사용자 편향적인 노동정책의 물꼬를 중립의 방향으로 돌렸지만 재계와 경제부처의 반발로 퇴진,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전문가들은『정부는 지금까지 노조와 회사의 중간에서 불편부당하게 중재.조정역할을 하기보다는 성장.안보.치안논리로 노동운동을억제해왔다』며『이제 문민정부는 노동행정의 자율성을 보장해줄 시점에 와 있다』고 말한다.
일부 기업은 적극적인 노사관으로 노동운동의 정치주의적 경향을경제주의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대부분은 노조를어용화시켜 미봉적인 안정을 추구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漁秀鳳연구위원은 최근 한국노동경제학회에 발표한「노동조합의 직장안정효과」라는 논문에서『6.29이후 노동운동의 활성화로 노동조합은 직장 안정효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밝히고있다. 따라서 다수기업들이 전근대적인 노사관을 폐기하고 자기혁신 능력과 창조적 파괴능력을 신제품 개발이나 시장개척에서 뿐만 아니라 노사관계 분야에서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노사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현재 진행중인 노동법 개정작업이 전향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이를 통해 불법쟁의가 반복되는 현실을 개선하고 국제경쟁력을 높이는데 노사가합심,노력하는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지 적이다.
단국대 金潤煥교수는『비노총계열의 재야노동 세력들도 제도권내에서 일정한 권한을 가질때에는 국가와 기업에 책임을 지는 합리성을 갖추게될 것』으로 전망했다.
〈李夏慶기자〉 [끝] ◇도움말 주신분=단국대 金潤煥교수,서울대 朴世逸교수,고려대 宋鍾來교수,서울대 裵茂基교수,홍익대 朴來榮교수,인하대 李永熙교수,노동인권회관 李仙柱사무국장,노동연구원崔永起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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