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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대안

로스쿨 정원 얼마가 좋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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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2일 오후 ‘로스쿨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에 앞서 장재옥 전국법과대학학장협의회 회장, 강치원 강원대 교수(사회자), 성낙현 영남대 법대 학장, 이정한 대한변협 기획이사(왼쪽부터)가 서울 중구 순화동 중앙일보 사옥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최정동 기자]

2009년 3월 개원하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총정원이 이달 중 정해질 전망이다. 개별 학교 로스쿨의 인가·설치를 담당할 법학교육위원회도 5일 구성돼 첫 회의를 한다. 로스쿨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이 마련됐지만 아직 ‘반쪽 법’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로스쿨 총정원에 대한 대략적인 합의조차 없기 때문이다. 법조계가 주장하는 1000~1200명 선에서 한국법학교수회가 원하는 3200명 사이의 총정원 견해 차는 크다. 로스쿨 유치전에 뛰어든 대학 간, 지역 간 갈등도 치열하다. 2일 학계와 현직 변호사가 모여 로스쿨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로스쿨 핵심 사안에 대한 결정을 앞둔 정부 측 관계자는 토론에 참여하지 않았다.

▶강치원(사회)=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이 7월 통과되고 지난달 28일엔 시행령이 공포됐다. 하지만 로스쿨의 총정원이나 설치 인가 기준 등 구체적인 방안이 확정되지 않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정한=대한변호사협회(변협)에서는 그간 로스쿨 제도 자체에 문제가 많다고 보아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법이 통과된 지금은 운용 방식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로스쿨 설치의 기본 목적이 법학교육을 정상화하자는 것이라면 최소한 로스쿨 졸업생의 70~80%는 법조인 자격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3년 전 로스쿨을 도입한 일본에선 올해 신사법시험(변호사자격시험)의 합격률이 40%에 불과했다. 이래서는 로스쿨 교육이 파행에 이를 것이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적정 법조인의 규모는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 구체적 사실과 자료를 갖고 입학 총정원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장재옥=학계와 시민단체는 지속적으로 올바른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해 로스쿨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변협은 반대 입장이었다. 먼저 로스쿨이 도입되는 근본적인 취지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첫째, 사법 불신의 시대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국민을 위한 진정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법률가 상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법률가 시장에서의 국가경쟁력 제고다. 자유무역협정(FTA) 등 국제교류에 있어 우리 법률가들이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가. 사법시험을 통해서만 법률가를 양성하다 보니 우리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 로스쿨 총정원의 문제도 도입 취지에 걸맞게 정해져야 한다. 법률가에 대한 수요는 우리 사회에 무궁무진하다. 이를 추산한 학계의 연구자료도 많다.

▶성낙현=현 정부에서 사법개혁 정책을 활발히 추진했는데 그 가시적인 성과가 로스쿨 도입이다. 국민생활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법이다. 근대 사법역사 100년간의 가장 획기적인 변화다. 특권층이 아닌 일반 국민 대다수를 위해 법이 운용돼야 한다는 것이 로스쿨 도입의 취지다. 기존의 사법시험은 1회의 시험으로 법률가를 선발한다. 이젠 법률가 양성 시스템이 바뀌는 것이다. 법조인 배출 숫자가 사법시험 합격생보다 획기적으로 늘어야 한다.
▶강치원=로스쿨 입학 총정원은 이달 내로 확정될 예정이다. 김신일 교육부총리, 정성진 법무부 장관, 장윤기 법원행정처장이 협의해 결정한다. 여기서 만들어진 정부안을 국회 교육위에 보고하게 돼 있다. 대한민국에 필요한 법조인 수는 어느 정도라고 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미국과 비교하면 어떤가.
▶이정한=변협이 1000~1200명 선을 주장한다고들 하지만 이는 변협의 의견이 아니다. 교육부에 의견을 제출할 때도 구체적인 숫자를 못박지 않았다. 사법개혁추진위원회는 현행 사법시험 시스템을 로스쿨 체제로 바꾸는 것을 기본 골자로 법안 설계를 했다. 이런 최초의 설계의도를 중시하는 측면에서 현행 사법시험 합격자 수와 유사한 숫자가 거론된 것뿐이다. 법조인 숫자를 늘릴수록 국가 경쟁력이 높아지는지는 검토해 봐야 한다. 숫자가 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있다. 변호사는 그 사회의 법률 수요에 따라 정해진다. 이를 사회 경제적으로 정확히 측정해 봐야 한다.

▶장재옥=우리 사회에 필요한 법조인 규모에 대한 연구자료는 많다. 변협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다. 한국은행 자료도 있고 여러 연구자가 발표한 논문도 있다. 이에 기초하면 변호사가 적어도 연간 3000~3500명은 나와야 한다. 연 2000명씩 배출돼도 17년이 지나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도달한다는 자료도 있다. 또 변호사의 직무영역을 확대해야 한다. 외국에는 변호사 자격을 갖고 일반 기업에 평사원으로 들어가는 이도 많다. 그래야 제대로 된 법치행정·법률문화가 꽃필 수 있다. 지금은 법률가의 조력을 받는 사람이 너무 적다. 전국 230여 개 시·군·구 중 52%에 등록 변호사가 없는 실정이다. 심지어 지방법원 소재지에 변호사가 한 명도 없는 경우가 있다. 서울중앙지법이 있는 서초동 주변에만 변호사의 59%가 몰려 있다. 제대로 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실정이다.

▶성낙현=지금까지는 사법시험 합격 하나로 인생이 바뀌는 식이었다. 그러나 로스쿨은 만능의, 완성된 변호사를 배출하는 것이 아니다. 변호사 적격성 여부를 가려낼 뿐이다. 그래서 로스쿨 총정원에 민감할 필요가 없다. 변호사 자격 취득 뒤 스스로 특성화를 통해 자신의 상품화를 추구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로스쿨은 훌륭한 변호사가 되기 위해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는 제도로 이해해야 한다. 변호사는 송무라는 전통적인 영역뿐 아니라 행정·입법 등 국가기관부터 사회단체·기업·금융·언론에까지 각계 각층에서 법적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 변호사가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강치원=변협 혼자서 방어해야 하는 입장이 된 것 같다. 사회적 법률 수요 측정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방식은 무엇인가. 기존 자료도 많다고 한다.

▶이정한=우리 사회에 필요한 변호사 숫자에 대해 연구한 최근 논문은 2편에 불과한 것으로 안다. 그중 하나가 소득 규모를 중심으로 미국과 비교한 연구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 국세청 자료로 한국의 변호사 소득을 산출하는 데 오류가 있었다. 한국은 2007년 기준으로 변호사 1인당 인구가 5800여 명이다. 일본과 비슷한 규모다. 사법시험 합격자 한 해 1000명 시대 이전의 자료를 갖고 외국과 비교해선 안 된다. 국민소득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변호사 수가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 2010년에 변호사를 연간 3000명 뽑는 것으로 사법개혁을 마무리하는 수순이다. 한국은 1995년에 로스쿨 논의가 처음 시작돼 당시 대대적으로 변호사 수요 조사를 했다. 송무뿐 아니라 기업·정부 부문에서 늘어날 수요까지 추정했다. 이 조사에 따라 당시 1000명으로 사시 합격생을 결정했다. 그러나 지금 검증해 보면 송무 외 다른 분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 수효의 10%도 실현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장재옥=일본인은 소송을 별로 하지 않는다. 송무 비율로 보면 한국의 변호사 숫자가 훨씬 적다. 현재도 각 산업영역에서 필요한 법률가 수를 고려하면 변호사 6만 명이 필요하다는 자료가 있다. 지금은 8000여 명이다. 60~70년대 농촌경제 기반으로 변호사의 숫자와 직역을 생각해선 안 된다. 우리가 찾아가야 할 영역이 널려 있다.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 한국이 변호사를 수출하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 국내로는 행정기관에서의 법무담당관제 도입, 지자체에 변호사 의무 배정 등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외국 기업과의 거래에서 계약서를 잘못 써서 낭패를 보는 중소기업이 많다. 변호사비가 너무 비싸 웬만한 손해면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성낙현=법률시장 개방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현재 한국의 변호사 규모로는 국제 경쟁이 안 된다. 독일도 영·미 로펌에 거의 잠식됐다. 개방을 앞두고 법률시장에서의 국제경쟁력을 놓치지 않으려면 일단 규모 면에서 인프라가 구축돼 있어야 한다. 프랑스도 법률 시장을 닫아 놓았지만 결국 미국 로펌에 잠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변호사의 숫자는 의미가 없는 것이 돼야 한다. 우리가 변호사 숫자를 제한해도 법률시장을 개방하면 해외에서 변호사가 몰려 온다. 교육의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강치원=로스쿨 설치 인가·심사는 법학교육위원회가 담당한다. 교육부에서 영역별 평가지표 등이 나왔다. 적절하다고 보는가. 지방에선 지역균형 배정 주장도 나오고 이것이 법률에 반영되기도 했다. 학생선발 쿼터제와 정원 제약이 평등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법대생들이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성낙현=어느 대학에 몇 명을 배정해야 하는가는 단순히 시장논리에 맡길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국토 균형발전을 염두에 둬야 한다. 국가는 국토의 효율적인 개발을 위해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가할 수 있다는 것이 헌법의 기본 정신이다. 국가 균형발전은 현 정부의 핵심적 국정 이념이기도 하다. 지방대학에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정치논리라는 지적이 있지만 어느 정도 인위적인 배분은 필요하다. 인재를 고루 할당해야 하지 않겠나. 고급 인력의 해외유출이 문제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역 간의 인재 유출도 심각하다. 로스쿨이 수도권 편중 현상을 해결할 방편이 될 수도 있다. 또 지금의 인가기준은 너무 엄격하다. 미국이나 일본의 로스쿨도 우리의 기준에 따르면 10%도 합격하지 못할 것이란 견해도 있다.
▶이정한=특성화·전문화·지역균형발전 등이 거론되지만 로스쿨이 성공하려면 졸업생이 법조인의 기본소양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로스쿨 심사 기준안을 보면 커리큘럼 등 교육과정의 질을 평가하는 항목의 점수가 29%에 그친다. 나머지는 시설 등 교육 여건에 대한 평가다. 돈으로 로스쿨을 사는 식이 돼선 안 된다. 미국은 변호사협회(ABA)에서 로스쿨을 평가한다. 변호사를 길러 내는 시스템은 현장의 변호사가 평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장재옥=교육의 내용과 질이 충실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교과목 간의 유기적 연결 등 교과과정 체계를 중시해야 한다. 그러나 사법시험의 변형된 형태로 로스쿨을 봐서는 안 된다. 다양한 경험과 능력으로 지구촌 어디에서도 경쟁할 수 있는 법조인을 만들자는 것이다. 로스쿨은 이미 4년의 대학 기간 중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이들을 뽑는다. 이들에게 법적인 마인드를 길러 주는 것이다. 지방에도 훌륭한 교육 역량을 갖춘 대학이 많다. 지역균형 발전 논리를 정치적인 노림수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정리=배노필 기자

<토론 참석자·가나다 순>

성낙현 교수
(영남대 법과대학 학장)

이정한 변호사
(대한변협 기획이사,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장재옥 교수
(전국법과대학학장협의회 회장, 중앙대 법대 학장)

사회
강치원 교수 (강원대 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