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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의 문학터치 <111> 한 개인의 우울은 시대 전체의 우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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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그러니까 벌써 15년도 지난 일이다. 김연수(사진)가 아침 아홉 시 십구 분에 엄청나게 큰 뭉게구름이 피어난 날이라고 기억한 그날, 서울의 하늘은 내내 찌뿌드드했다. 금요일이었고, 4월 26일이었다. 명지대 신입생 강경대가 창졸간에 열사가 됐다고 서울 시내 대학에 사발통문이 돌던 시각, 잿빛 하늘엔 막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김연수의 말마따나, 우리에게 1991년 5월은 그렇게 시작됐다.

 올해 황순원문학상 수상작가 김연수(37)가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문학동네)을 내놨다. 문예지 ‘문학동네’에 1년 넘게 연재됐던 걸 책 한 권으로 묶었다. 출처를 굳이 밝히는 건, 소설이 연재 도중에도 각별한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90년대란 세대 의식을 대표하는 작가가 작심하고 재현한 ‘91년 5월 상황’이란 점에서 소설은 진작부터 화제의 복판에 있었다.

 여기서 91년 5월을 말해야겠다. 대학 새내기가 학교 정문 앞에서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은 그 금요일 이후 한국 사회엔 소위 ‘죽음의 굿판’이 두 달 가까이 이어졌다. 전국에서 십수 명이 시위 중에 죽거나 분신하거나 투신했다. 개중엔 5월 25일, 추적추적 봄비 내리는 토요일 오후 서울 퇴계로에서 시위 도중 질식사한 여학생도 있었다. 김귀정 열사, 김연수의 대학 선배다.

 그러나 그 가팔랐던 정국의 결말은, 지금 생각해도 초라하고 또 엉뚱했다. 유서대필 소동으로 시끄럽더니 결국엔 정원식 총리 밀가루 투척사건이 터졌다. 그 뒤로는 아무도 그해 5월을 입에 담지 않았다. 작가는 그때를 “그 모든 과정이 나만 모르고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과정에 개입할 수 없었다”고 소설에 적었다. 뒤이어 세상은 달라졌다. 김연수는 하루아침에 변한 세상을 다음과 같이 잘라 말했다.

 ‘1991년 5월 이전까지만 해도 대뇌의 언어로 말하던 사람들이 1992년부터 모두 성기의 언어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설은 91년 5월을 재조립하는데 머무르지 않는다. 김연수는, 91년 5월을 온몸으로 겪은 운동권 대학생 ‘나’의 삶 곳곳에 한국 현대사의 다른 국면을 산 인물을 하나씩 배치했다. 일본군 학병으로 징집돼 남양군도의 어느 섬까지 내려갔던 할아버지가 그 하나고, 68년 4월 30일 서울 중앙전신국 수류탄 투척사건에 휘말린 정민의 삼촌이 또 다른 하나다. 그리고 독일에서 만난 이길용(또는 강시우)이 있다.

 할아버지는 광복 이후 간첩으로 몰려 옥살이를 하고, 정신병을 앓던 정민의 삼촌은 마약 사건에 연루되고, 이길용(또는 강시우)은 80년대 학원가 프락치였다. 전혀 다른 시대를 겪은 이들 셋은 그러나 소설 막판, 서로 얽혀있는 존재란 사실이 밝혀진다. 어찌 보면 억지 같아 뵈지만 다시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김연수에게 91년 5월이 있듯이, 이 땅에서 한 개인의 삶은 한 나라의 역사를 온전히 담고 있어서 그러하다. 아니 한 개인의 우울은 시대 전체가 느꼈던 거대한 우울이어서 그러하다. 당신이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말이다.

 김연수는 황순원문학상 수상 인터뷰에서 자신을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고 못박았다. 이때의 소설은 심심풀이 땅콩 차원의 글 무더기가 아니다. 김연수가 정의하는 소설은, 적어도 그 이상이다. 이번에도 그는 바로 그 소설을 썼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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