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지하철 연대파업/정치투쟁으로 변질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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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2노총」집착하며 전노대 개입/노정 “서로손해”벼랑끝 타결기대
사상 초유의 철도·지하철연대파업이 정치투쟁으로 변질되는 양상을 보이며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수도권전철 이용자 1백10만명을 포함,전국 철도와 지하철 이용객 2백만명의 발이 묶이는 교통대란에 시민들의 분노가 높아지고 있다.
시민들은 88년 7월의 철도파업과 89년의 지하철파업에 이어급기야 연대파업까지 벌어진데 대해 전기협·지하철노조의 집단이기주의를 비난하고 있다.
철도사태는 96년 공사화를 앞두고 철도노조에서의 세력을 확보하려는 전기협과 법외단체와는 교섭할 수 없다는 철도청의 대립이 계속된 가운데 공권력투입―전면파업이라는 최악의 수순을 밟았다.
○대표권 인정겨냥
합법단체인 지하철노조의 경우는 공무원임금인상가이드라인 3%를 깨는 임금인상을 타킷으로 했으나 뜻대로 협상이 진행되지 않자 직권중재를 무시하고 파업에 들어갔다.
전기협은 철도청이 철도노조와 특별교섭까지 벌여가면서 1백20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처우개선안까지 내놓았음에도 변형근로시간제 완전철폐와 해고자 복직등 무리한 요구조건을 내걸고 이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에서는『노사교섭의 관행을 무시한채 일시에 요구조건 전부를 들어달라는 식』이라며 의도를 의심하고 있다.한마디로 임금인상보다는 대표권을 인정받기 위한 정치투쟁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하철노조가 냉각기간중임에도 추가협상을 거부하고 전면파업에 돌입한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처럼 철도·지하철사태가 정치투쟁적인 성격을 띠게됨에따라 이제는 노동계 전체에 미칠 파급정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일단 서울지하철노조와 전기협이 강경입장을 고수한 끝에 물리적으로 충돌한 상황이어서 충격의 후유증으로 당분간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법과 원칙에 따른 사태해결 수순을 밟을 태세고,서울지하철노조와 전기협은 파업상태 유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부산교통공단은 일단 파업돌입 시기를 하루 연기한채 24일 마지막 협상을 벌이기로 했으나 타결 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태고 25일새벽 파업에 돌입할 전망이어서 사태는 갈수록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철도·지하철 파업에 이어 대기업노조를 중심으로 한산업현장의 동시파업으로까지 상황이 전개될지 여부가 최대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공동파업은 미정
전국적인 차원의 동시파업돌입 여부는 철도·지하철파업시기에 맞춰 공동투쟁방침을 수차례 밝혔던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가 예정된 수순을 밟을지 여부에 달려있다.
전노대는 25일 전국단위노조대표자회의를 소집,연대파업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전노대는 정부의 공권력투입이후 일단 전면투쟁을 선언하는등 강경입장을 밝혔으나 정부가 구속자를 석방하고 성의있는 교섭자세를 보인다면 대화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전노대의 한 관계자는『현재로선 전국적인 차원의 공동파업을 벌이겠다는 입장이 결정된것은 아니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노동부도 23일 철도파업직후 남재희장관의 담화문을 통해 『기관사들이 파업을 철회한다면 대화를 재개하고 협상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며 여지를 남겨놓았다.
양측이 파업의 긴장상태속에서도 협상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은 철도·지하철파업에 대기업노조까지 가세한다면 통제 불가능한 최악의 상황이 초래되므로 서로에 득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노동부의 한 간부는『현대중공업·대우조선등 대기업노조들이 참여하는 산업현장의 공동파업은 철도·지하철파업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심각한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전노대측이 대화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전국적인 차원의 공동파업이 벌어질경우 자신들이 비판적인 여론의 표적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제2노총건설이라는 최대의 목표가 타격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노대관계자들은 철도문제가 전면에 등장하기 오래전부터『철도파업은 전노대의 역량을 제2노총건설에 쏟을 수 없게 만드는 악재』라는 말을 공공연히 해왔다.
정부가 철도·지하철 파업을 유도해 신공안정국을 조성하려한다는 비난도 이같은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소신뢰는 유지
이와 함께 노동부와 전노대가 서로에 대해 최소한의 신뢰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점도 극적인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양측은 철도에 대한 공권력 투입,파업직전인 22일밤까지도 전기협과 철도청을 대좌시키려 하는등 파국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보였다.
물론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상대방에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명분축적용이라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이번 사태의 전개과정에서 실력행사를 앞세우는 공안부서의 입김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반영되고 있어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해결방법을 모색하는 노동부의 입장이 얼마만큼 반영될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노와 정을 막론하고 산업현장의 파업만은 막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한 방안이 막판까지 모색될 것으로 보인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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