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24시>11.연탄가스중독 기사회생 파키스탄人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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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국에서 5년가까이 불법체류 하면서 온갖 설움을 겪었던 파키스탄인 모하메드 타릭(31)-.그러나 그는 이제 한국인의 깊은인정을 실감하고 있다.
단순 노동자로 공장. 공사판을 전전하면서 한국사회에 적응하기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던 그는 올초 연탄가스에 중독돼 하마터면 한줌의 재가 돼 귀국할뻔 했다.
의식불명인채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그는 자신을 그토록 냉대하던 한국인들의 도움으로 회생했고 장기간의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한국의 언어와 역사.문화를 알려고 무던히 애썼던 그는 죽음의 고비를 넘긴 이제서야『한국과 한국인에 관해 조금 알 것같다』고 말한다.
모하메드는 지난 1월5일 성남의 자취방에서 친구 두명과 함께잠을 자다 연탄가스에 중독됐다.
3주동안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두손과 두발은 오그라들어움직일 수 조차 없었고 간단한 의사표현도 하기 어려웠다.함께 입원했던 스리랑카인 친구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돼 있었다.
이무렵 대사관을 통해 모하메드의 소식을 전해듣고 달려온 가톨릭명동상담소의 자원봉사자들은 그를 살려낸 구세주였다.그가 성남과 서울의 세군데 병원을 거쳐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해 있는동안 수천만원에 이르는 치료비는 무료로 처리됐다.
명동상담소는 간병인까지 지정해 대소변을 받아내도록했다.그는 5월19일 오그라든 두다리를 펴 깁스로 고정하는 수술을 받았다. 『회교도인 저에 대한 한국 가톨릭신자들의 종교와 국적을 초월한 인간적인 사랑과 도움은 평생 잊을수 없을 것입니다.』 모하메드는 여느 외국인 근로자와는 다른 별종이었다.홀어머니 슬하의 9남매중 다섯째였던 그는 89년 8월18일 일본에 가기 위해 한국에 관광비자로 입국했다.
카라치대학 상대4학년이었던 그는 군인들을 중심으로 한 독재정권에 염증을 느낀 전형적인 반체제 대학생이었다.그러나 일본행은까다로운 입국절차 때문에 좌절됐고 하는 수없이 한국에 남게 됐다. 그는 서울.수원.안양.구리.성남의 가구.프레스.신발.봉제공장을 전전하면서 한달에 40만원정도를 받았다.
야근과 잔업을 반복하는 고단한 일과가 계속됐다.하지만 그는 시간을 내 학원에서 한국어를 공부했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역사강좌도 들었다.라면으로 끼니를 이어가면서 한달 수강료가 35만원씩이나 하는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 강좌를 6 개월동안 공부하기도 했다.
『돈이 모자랄 때는 공장을 나와 공사판에서 막일까지 해야 했지만 뭔가 배우지 않고는 견딜수 없었어요.』 마침내 한국어를 불편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됐고 역사지식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됐다. 그는 지난해 10월 뛰어난 한국어.영어구사 능력과 컴퓨터실력까지 인정받아 서울의 작은 무역회사에 사무직으로 입사,화이트칼라로 변신했다.
『한국사회에 동화됐던 탓인지 혼수상태서 깨어난 뒤 한동안은 한글은 쓸수 있는데 파키스탄어는 글로 쓰지 못하는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모하메드는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해준 한국인들에게 보답하는 유일한 길은 열심히 사는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그는 몸이 회복되는대로 귀국해 방송국의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 전문가로「제2의 인생」을 시작할 계획이다.
〈李夏慶기자〉 다음회는「서로 의지하고 지내는 스리랑카 근로자와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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