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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빠른 고수들은 ‘농지은행’에 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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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집은 없어도 땅은 사라’는 부동산 투자 고수의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부동산 대박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땅을 사서 부자가 됐다고 성공담을 내뱉는다. 하지만 부자의 지름길로 인식됐던 땅 투자가 요즘 갑자기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4년 전 경기도 양평군에서 투자용으로 논 6600㎡(2000평)를 매입한 박 사장(53·서울)은 최근 골치가 지끈지끈 아프다. 얼마 전 군청으로부터 ‘처분 대상’ 농지라는 통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동네 주민에게 농사를 맡겼던 박 사장은 갑작스러운 통지를 받고서야 ‘부재 지주는 농지를 보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농지법은 1996년 1월 이후 농지를 샀을 때 본인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 타인에게 임대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개발 호재를 기대하고 장기 보유할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한 박 사장은 1년 이내에 이 땅을 팔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만약 시한까지 농지를 팔지 않으면 공시지가의 20%에 이르는 이행 강제금을 물어야 한다. 어림잡아도 200만원이 훨씬 넘는다. 농지를 팔려고 해도 토지 거래가 위축된 상황이라 쉽게 매각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높은 양도소득세율도 골치다.

이런 문제는 비단 박 사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달부터 농지이용 실태조사가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되면서 농사는 친인척이나 동네 주민에게 맡기고 농지를 소유하고 있던 부재 지주들이 좌불안석이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농지를 산 최 사장(59·인천)은 사정이 다르다. 2년 전 취득한 논을 ‘농지은행’에 위탁하고 매년 500만원 정도의 임대료를 받고 있다. 땅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 말고도 5년 계약으로 벌어들일 2500만원의 임대 수입을 생각하면 마음이 흐뭇하기만 하다. 아울러 임대기간 동안은 강제로 농지를 팔아야 하는 고민도 없다. 금상첨화로 정부는 내년부터 농지은행에 8년 이상 임대를 위탁한 농지에 대해 양도소득세율을 깎아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세법은 원칙적으로 비사업용 토지에 대해 60%의 높은 양도소득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농지은행에 장기 임대해준 토지에 대해선 일반 양도소득세율(9~36%)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2005년부터 도입된 농지은행 제도는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운 농지 소유자로부터 임대위탁을 받아 농가나 농업 법인에 임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다만 모든 농지가 농지은행에 위탁되는 건 아니다. 이미 지방자치단체가 처분명령을 내린 농지는 위탁이 불가능하다.

정복기 삼성증권 FB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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