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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과주말을] 한없이 가볍고, 한없이 무거운 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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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
김수연 외 지음, 해냄
256쪽, 1만2000원

30대 남녀 4명이 모여 떤 수다를 정리한 책이다.(‘무비위크’ 김수연 기자, ‘얼루어’ 김애경 기자, 자유기고가 이윤철씨, 한양대 겸임교수 탁현민씨가 화자다. 이들 중 김애경·이윤철씨는 부부다.) 수다는 무려 7개월 동안 이어졌단다. 주제는 ‘예쁘고 잘 생기면 용서가 되나?’ ‘결혼은 정말 미친 짓일까?’ ‘아이 낳아? 말아?’ 등으로 연애와 결혼, 직장생활, 불륜과 로맨스, 출산과 육아 등을 종횡무진 넘나들었다.

실명을 밝히는데도 이야기는 거침이 없다. 심지어 아내가 옆에 있는데도 남편이 섹스 이야기까지 용감하게 털어놓는다.

“첫 경험은 진짜 안 좋았어. 재수할 때였는데, 여관 냄새도 너무 안 좋았고, 처음으로 직접 본 여자의 알몸도 너무 현실적이어서 감정이 안 생겼어.”(이윤철)
“미안하지만 내게 섹스는 의무방어전이야.”(김애경)
중구난방 이어지는 수다 속에서 이들은 나름의 깨달음을 찾는다. 특히 ‘우리는 왜 나쁜 이성에게 끌리는가’에 대한 수다의 결론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상대방을 안달나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드는 이성, 상대방의 말을 따라주기보다는 내게 요구하는 게 더 많고 자기 말을 다 들어주게 만드는 그런 이성이 나쁜 이성이지. ‘나쁜 이성’이라는 주홍글자를 달고 태어나는 사람을 없을 거야. 덜 좋아하는 사람이 그 연애의 상대에게는 ‘나쁜 이성’이 되는 거지. 덜 좋아하기 때문에 연락이나 애정 표현도 덜 하는 것이고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에 더 익숙한 거지. 만약 그 ‘나쁜 이성’도 자신이 상대를 더 좋아한다면 하루아침에 ‘착한 이성’으로 변신할 거라고 봐. 결국 ‘나쁜 이성’은 상대적인 거야.”(34쪽)

이들의 수다를 따라가다 보면 요즘 30대의 세태가 눈에 그려진다. 직장에서 윗사람만 신경 쓰면 됐던 시절은 끝나고 이젠 후배 눈치까지 봐야 한다. ‘조금만 더 버티면 차장 직급을 달 수 있는데’하며 조금만 더 참기로 한다. 나이가 들수록 돈이 주는 위안이 크다는 걸 절감한다. 결혼을 하니 아내가 점점 엄마 같은 존재가 된다. 아이가 생기면서 조금씩 사소하게 내 인생이 사라진다. 자기 혼자 경제적인 책임을 떠안고 싶은 남자들이 이제는 극소수다. …
메시지의 무게에 비해 책 분량이 좀 많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쩌랴. 수다의 속성이 원래 그런 것을.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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