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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샌드위치코리아] 우리도 로열티 받는 기술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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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가 15년에 걸친 연구개발 끝에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경북 포항의 파이넥스 공장이 환한 불빛을 내뿜고 있다. [중앙포토]

돌아온 명가 … 주성엔지니어링

 주성엔지니어링은 반도체·박막액정표시장치(LCD) 장비업체 가운데 ‘돌아온 명가’로 불린다. 1999년 코스닥에 상장된 이 업체는 초기에 반도체 증착장비(CVD)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반도체는 CD 모양의 웨이퍼를 가공해 만든다. 실리콘 원판 표면에 회로도를 새기고(노광), 그대로 표면은 파낸 후(식각) 전기적 신호를 보내는 얇은 막을 입혀(증착) 완성한다. 이 회사는 미국과 일본의 몇몇 업체만 갖고 있던 증착 기술을 자체 개발했다. 덕분에 2000년 2월에는 액면가 500원인 주식이 12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며 ‘코스닥 명품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2001년 최대 거래처인 삼성전자 납품이 끊기고, 반도체 경기마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적자 늪에 빠졌다. 1년 만에 주가가 1550원까지 떨어지는 위기를 주성은 꾸준한 기술개발로 극복했다. 2004년 증착 기술을 LCD 제조에 적용하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극적으로 회생했다. 2005년에는 반도체용 원자층 증착장비(ALD)를 개발하고, 지난해 5월에는 하이닉스반도체와 함께 차세대 반도체용 지르코늄다이옥사이드(ZrO₂) 장비를 세계 최초로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올 2분기에는 사상 최대인 657억원의 매출에 107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최근에는 태양광 전지 제조설비 개발을 마치고 본격적인 납품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정희석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주력 장비인 ALD의 해외 수주가 늘고 태양광 분야 매출도 하반기부터 본격화되면서 2009년이면 태양광 관련 매출 3000억원을 포함해 1조원 가까운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현영 기자

한국의 퀄컴 … GCT세미컨덕터

 통신용 반도체 전문업체인 GCT세미컨덕터는 ‘한국의 퀄컴’을 꿈꾸는 대표적인 팹리스 업체 중 하나다. 팹리스는 생산시설 없이 연구개발(R&D)에 집중하는 업체를 말한다. 개발 제품은 대만의 USMC같은 파운드리(위탁생산 전문업체)에서 양산해 완성품 업체에 공급하게 된다. GCT는 당시 서울대 박사과정을 밟던 이경호(38) 사장이 설립했다. 재미교포 데이비드 리와 함께 미국에 ‘실리콘이미지’사를 세운 은사 정덕균 교수의 일을 돕다가 독립한 것이다. 투자를 받으려고 미국 새너제이에 본사를 뒀지만 130여 명의 직원이 모두 근무하는 서울의 자회사가 실질적인 헤드쿼터다.

GCT는 중국 휴대전화용 전파 송수신기(RF 모듈)를 개발한 것을 시작으로 블루투스 칩셋, DMB용 통합 칩셋 등을 잇따라 선보였다.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RF·베이스밴드·모뎀 칩을 하나로 통합해 크기를 줄이고 가격을 낮췄다. 지난해에는 와이브로 칩셋을 개발해 삼성전자 등에 공급한 데 이어 최근에는 위성과 지상파 DMB를 모두 수신할 수 있는 단일 칩셋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사장은 “팹리스 업체가 국내외 경쟁사와 같은 성능의 제품을 만드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잘라 말했다. 같은 성능이라면 완성품 업체들이 굳이 기존 거래처를 바꿀 이유가 없거니와 가격 경쟁력 면에서도 같은 제품을 반값에 만들수 있는 대만 업체들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소한 2년 이상 앞선 기술을 확보하고 앞으로 5년간의 로드맵을 완성품 업체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사장의 지론이다.

김창우 기자

 

포스코 파이넥스 - 연구비 5000억 투입 … 제조원가 20% 낮춰
삼성 와이브로 - 세계 첫 상용화 성공 … 생산 유발 효과 33조

연구 착수 11년 만에 세계 최초로 파이넥스 공법이 실현 가능하다는 걸 입증한 순간이었다. 이후 포스코는 성형철 공장을 자체 기술로 만들어 상용화의 길을 텄다. “미국 사회가 단 12초밖에 날지 못한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를 인정했기에 오늘날 음속을 넘나드는 첨단 항공기술이 자랄 수 있었다”는 이 이사의 신념이 열매를 맺었다. 포스코는 꼭 4년 만인 5월 30일 150만t 규모의 파이넥스 공장 가동에 들어갔다. 기존 공정보다 생산원가가 20% 이상 낮고 오염도 적다. 15년에 걸쳐 600여 명의 연구인력이 투입되고, 5000억원이 넘는 연구개발(R&D) 비용을 들인 결과였다.

 원천기술 확보는 날로 격심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잡을 수 있는 핵심 원동력이다. 한국 기업들은 2000년 이후 전자·제약·중공업 등 분야에서 상당한 수준의 원천 기술을 쌓아 왔다. 파이넥스를 비롯해 DMB나 와이브로 같은 정보통신 관련 기술이 대표적인 경우다. 엔텍비전·코아로직·주성엔지니어링처럼 반도체 장비나 통신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부품업체들도 나왔다. 아직 아득하지만 기술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는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원천기술로 세계시장 장악 나선다=10여 년 전 미 퀄컴에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원천기술을 도입한 한국은 세계 최초로 이 기술의 상용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엄청난 로열티를 들여야 했다. 최근 3년 동안 1조5000억원에 육박한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자체 개발한 와이브로 기술로 지난해 8월 미 스프린트와 손잡고 미국 내 서비스에 들어갔다. 유영환 정보통신부 장관은 “우리나라가 원천 기술을 보유한 통신 서비스와 시스템을 이동통신 종주국에 역수출하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와이브로의 해외 보급이 본격화하면 2012년까지 생산 유발 효과가 33조원을 넘는다고 추산했다. 실제로 통신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인 KMW가 최근 스프린트에 96억원 규모의 와이브로용 안테나 공급계약을 하는 등 ‘와이브로 효과’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LG전자는 최근 7년간 끌어온 컴팔 등 대만 PC 제조업체와의 PCI 관련 특허소송을 마무리했다. 상황이 LG전자에 유리하게 흘러가자 대만 업체들이 백기를 든 것이다. 이 회사는 파산한 미 왕컴퓨터로부터 1992년 이 기술을 사들였다. 특허센터장인 이정환 부사장은 “이미 10여 업체와 로열티 협상을 끝내고 30여 업체와 협상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이 기술로 최고 2억 달러의 사용료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 이상의 설움은 없다=일본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한국 제조업이 한 계단 업그레이드하는 비법은 이처럼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기존의 ‘기술 도입→생산성 향상→저가 시장 진입’이라는 구조는 한계에 달했다. 텔슨전자·세원텔레콤·맥슨텔레콤·VK 등 2000년대 초반 잘나가던 업체들은 지금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R&D에 투자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증거다.

이광호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박사는 “여전히 ‘기술은 사오면 된다’며 R&D에 소홀한 기업이 많지만 대기업을 중심으로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한계를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 생산은 인건비가 낮은 곳으로 이전하고, 한국을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기지로 만들려면 원천기술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창우 기자

◆파이넥스=가루 상태의 철광석과 석탄을 그대로 유동환원로에 넣어 쇳물을 만드는 공법. 철광석 가루를 소결공장에서 송편 크기의 철광석으로 가공하고 석탄 가루를 공장에서 가공해 코크스를 만든 뒤 고로에 넣어 쇳물로 만드는 기존 공법에서 소결·코크스 단계를 생략할 수 있다.

◆와이브로=3세대를 넘어서 4세대 무선통신의 기초가 되는 기술. 시속 60㎞ 이상으로 이동하면서도 20Mbps(초당 2000만 비트)를 전송한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하나의 단말기로 동시에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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