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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家] 우리茶 연구가 이연자씨의 우이동 문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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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운은 막고 행복은 담고. 참 오랜만에 만나는 성주단지다.

어릴 적 안방 시렁 위에는 쌀을 담아 창호지로 봉해놓은 성주단지가 있었다.

어른들은 성주가 집안의 안녕과 화복을 맡고 있다고 믿어 맨 먼저 추수한 햅쌀을 정성껏 성주단지에 담았다.

나쁜 일이 생기면 성주 앞에서 물리쳐 달라고 빌었고 기쁜 일도 그 앞에서 고했다. 고방에는 새침한 삼신할매가 살고

부엌 아궁이 곁에는 음전한 조왕신이 앉아계신 줄로 믿던 시절, 집안 곳곳을 지키는 신이 있어 세상은 너그럽고 풍성했다.

그 성주단지, 지금은 사라진 줄 알았던 오지항아리를 모셔놓은 집이 있다기에 정초의 들뜬 기분으로 달려가 봤다.

우이동 문수원은 마당 가진 단독주택이 아니다. 흔한 연립주택에 불과하다. 겉은 낡은 빌라이나 안은 수백년 묵은 고가의 유현함이 감돌아 시간을 잊게 만드는 집이다. 우선 집안에 새로 산 물건이 거의 없다. 부엌 가전제품 몇을 빼고는 아무리 새것이라도 40~50년은 족히 넘었을 살림살이들이다. 그 오래된 물건들이 제 앉을 자리를 찾아 간결하게 놓인 거실, 옛 한옥의 마루장으로 만든 길쭉한 다탁 앞에 30년 넘게 차공부를 해왔다는 안주인이 단정하게 앉았다.

그는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는 절을 하고 보는 법이라며 가벼운 평절로 인사를 나누자고 했다. 모처럼 한무릎을 세우고 고개를 깊이 숙이는 평절을 해봤다. 아닌게 아니라 기분이 달라진다. 숙였다 드는 눈에 비치는 화로, 찻주전자가 한결 침착해지고 안주인 이연자씨가 손수 물들여 지었다는 치마저고리 맵시가 한층 온화해 보인다.

▶ 무슨 이야기들이 실렸을까. 사연처럼 켜를 이룬 편지꽂이가 재미있다.

"제 고향이 남쪽 밀양이라 어릴 적엔 배탈이 나면 죽로차를 마셨어요. 나중에는 술 좋아하는 남편(차와 금문을 연구하는 김대성씨)의 숙취해소를 위해 차를 달였고…. 차의 역사를 찾아다니는 남편을 따라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일본.태국 등 차자 붙은 곳은 어디든 안 가본 데가 없어요. 그 세월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차 전문가가 돼버렸네요."

그는 명절 제사를 '차례'라고 부르는 것에 주목해 제사에 차를 올린 근거를 찾으려 전통 제례도 연구했다. 덕분에 요 몇 년간은 전국의 종가를 돌며 제례뿐 아니라 집집마다 다른 전래음식, 생활예법, 풍속들을 취재해왔다. 차를 이용한 음식에 관한 연구에도 일가를 이루고 있다. 안주인이 내로라하는 명문대가를 샅샅이 살피고 다닌 안목을 가졌으니 문수원 실내에 시간을 뛰어넘는 고졸함이 얹힌 것은 당연 한 일이겠다.

그가 편리한 아파트 생활을 버리지 않으면서 옛 맛을 얻기 위해 맨 먼저 한 일은 집안의 문이란 문은 모조리 조선종이 바른 한식문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이사 때 다른 가구는 빼놓을 지언정 창호문짝은 꼭 들고 다녔다. 거실과 부엌을 가르는 유리문 대신 문살이 가지런한 창호 미닫이로 바꾸고 현관 앞에도 한식 문을 달았다. 안방에는 옷장 대신 벽면 하나에 한식 문을 달아 붙박이 옷장을 만들었다.

창호지 문은 은연중 그 문 바깥에 펼쳐진 공간을 연상하게 만든다. 문을 밀면 은성한 뒤란에 대숲이 서걱댈 것만 같은 착각을 준다. 덕분에 안방의 심리적 크기가 드넓게 확장되었다.

그는 진작부터 집 꾸밈에 관심이 유난했다. 인테리어라는 말이 일반화하기 이전부터 서양 잡지에서 잘 꾸민 집 사진이 보이면 기사를 오려놓곤 했다. 그런 스크랩북이 다섯권 쯤 쌓일 무렵 우리 전통 가구가 더 기품있고 매력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뒤론 기회 있으면 조선 목가구를 보러 다녔다. 부부는 새로 물건을 사지 않는 대신 오래된 물건에는 욕심을 부렸다. 거실에 놓인 먹감나무 문갑, 소나무 서안, 괴목 반닫이, 그릇장으로 쓰고 있는 부엌의 의걸이장, 안방의 오동나무 고비, 그것들이 제각기의 사연을 안고 그들에게 옮겨왔다. 묵은 가구들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집은 조금씩 그윽해졌다.

이 집엔 플라스틱이나 금속, 심지어 유리로 된 물건도 눈에 띄지 않는다. 있다면 찻물을 끓이는 쇠화로 정도인데 오래된 무쇠라 금속의 찬 느낌은커녕 외려 투박하고 따스하다. 이 화로는 고물상에서 녹이 슨 채 버려진 걸 헐값에 주워왔다. 찬찬히 녹을 닦고 들기름을 두되나 먹였다. 그랬더니 튼실하고 의젓하게 변해 지금 이 집 거실의 중심이 돼주고 있다.

문수원 거실엔 여느 집 중앙에 떡 버텨있게 마련인 텔레비전이 없다 (대신 부엌 한 귀퉁이로 밀어넣었다). 텔레비전 자리에 책과 무늬 아름다운 기왓장을 두고 벽에는 고풍스러운 시계와 이집 부부가 극진하게 섬기는 신농씨의 사진을 걸었다. 그것만으로 실내는 아연 온아.우미해졌다. 이씨는 올이 거친 무명 한필을 사서 숯물을 들이고 가장자리를 흰 실로 홈질해 다탁에 까는 매트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굽도리만 살아있는 분청사기 파편을 주워 차받침으로 쓰는 재미도 누린다.

버려지는 옛 물건을 되살리는 아이디어는 이 집안에 숱하다. 베짤 때 쓰던 바디 위에 길쭉한 동양화를 붙여 훌륭한 그림틀로 삼았고 시어머니가 애들 몫으로 만들어준 골무 셋을 서랍 안에 숨겨두는 대신 낡은 나무쟁반 위에 붙여 세상에 하나뿐인 설치미술품을 만들었다. 금문을 연구하는 남편의 청동화폐들도 벽에 나란히 거니 멋진 추상화가 되었다.

문제의 성주단지는 안방 귀퉁이, 천장아래 매단 선반 위에 얌전히 올려져 있었다. 마름모로 접힌 창호지를 덮고 속에는 지난 가을 첫 추수한 햅쌀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이연자씨는 외출할 때 여기다 대고 다녀오마고 인사하는 것이 이제 익숙해졌다.

"시어머님이 물려준 항아리예요. 우리집 가신이지요. 혼인한 지 33년이 되었는데 해마다 시월 상달에 햇곡식으로 갈아담습니다. 지금이야 쌀이 귀할 게 없지만 예전에는 아마 흉년에 쓰는 비상식량의 의미도 있었을 겁니다. 우리집 세 아이들도 자라면서 하도 봐와서 저곳에 집의 성주가 있다고 여기지요."

집은 긴장을 풀고 휴식하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공간이지만 동시에 심신을 닦고 자신을 성찰하는 사색과 공부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럴 때 거기 놓인 성주는 가족을 지키는 눈길이 되어 삶의 완급을 너그럽게 조절해줄 것같다.

옛 풍습대로 성주를 모시고 살자는 생각과 더불어 이들 부부는 한때 '당호짓기 운동'에도 열심이었다. 문수원도 공간마다 이름을 가지고 있다. 거실은 글을 수놓는다는 문수원( 文繡園), 안방은 차의 맥을 잇는다는 선맥원 (仙脈原), 아들방은 백운산방, 다른 방엔 돼지를 형상화한 금문, 부엌은 심거요다지실(深居樂茶之室)이라는 현판을 각각 붙여두었다.

"자신이 몸담은 공간에 이름을 만들어 두면 거기에 걸맞은 삶을 꾸리게끔 스스로를 다스리게 됩니다. 획일적인 아파트 공간에 독특한 당호를 만들어 붙이면 그때부터 집의 기운이 달라지지요."

문수원엔 집의 곳곳에 차나무를 키운다. 푸른 잎을 완상하기도 하지만 생차잎을 따서 요리에 쓰기 위해서다. 한번 우려낸 작설차는 아까우니 참기름을 쳐서 나물로 먹거나 밀가루를 섞어 전을 부칠 것, 묵은 녹차의 향과 맛을 살리려면 뭉근한 불에 살짝 다시 덖을 것 등 손쉬은 녹차 재활용법을 귀띔하면서 차향 가득한 실내에서 이연자씨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생이 아무리 윤회해도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천당에 가도 지금 우리집만큼 좋은 공간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아요."

여운이 아주 오래 가는 말이었다.

김서령 생활칼럼니스트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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