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교수의비즈니스협상학] 협상 깬 부하 직원 칭찬하는 CEO 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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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번 협상 성사 못 시키면 귀국할 생각 마.”

 K부장이 미국 뉴욕 거래선과 합작투자 협상을 하기 위해 떠날 당시 사장한테 들은 으름장이다. 그런데 K부장은 막상 상대와 만나 보니 기술 수준이나 영업 능력이 기대보다 형편없어 판을 깨 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장의 당부 때문에 마지못해 서명하고 돌아왔다. 내막을 모르는 사장은 그런 K부장을 ‘한 건 했다’며 칭찬할 것이다. 우리 기업이 가장 많이 범하는 ‘협상 탈출 실패’의 전형이다.

 실무자로선 협상을 깨 버리는 게 이익인 줄 뻔히 알면서도 윗사람 당부가 마음에 걸려 협상을 성사시키는 경우다. 대부분 경영자는 ‘일단 시작한 일은 끝장 봐야 한다’는 승부근성이 배어 있다. 직원에게도 승부근성을 고취하려면 협상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따르는 협상엔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전 세계 합작투자의 반 이상이 5~6년 만에 깨진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부하 직원이 협상을 깨 버리고 돌아오는 게 오히려 성공일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최고경영자(CEO)는 사운을 건 협상은 직접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기업을 팔고 사는 인수합병(M&A) 협상에선 더욱 그렇다. M&A 협상은 가격뿐만 아니라 회계부실·우발채무·환경오염 등을 철저히 살펴야 한다. 그런 만큼 10여 명 전문가로 구성된 협상팀이 ‘악역’과 ‘선역’으로 나뉘어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기술이나 마케팅 분야를 점검하는 선역팀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협상하겠지만 회계나 환경 문제를 담당하는 악역팀은 낯을 붉혀 가며 철저히 따지는 게 필수적이다. 협상팀이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큰 손해를 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CEO가 너무 설쳐 대면 악역팀이 슬며시 꼬리를 내려 버리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CEO가 팔짱만 끼고 모든 일을 실무자에게 맡겨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CEO가 취할 바람직한 협상 자세는 실무팀과 역할을 분담하는 이원적(two-track) 협상 전략을 펴는 것이다. 인수 대상 기업의 선정이나 인수가격 결정 등 큰 그림은 CEO가 그리되, 회계·환경·세무·법률 등의 문제는 실무팀이 철저히 챙기도록 맡기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바람직한 리더라면 협상에 대해 세 가지 자세를 가져야 한다. 첫째, 협상하러 가는 부하에게 한건주의를 심어 줘선 절대 안 된다. 둘째, 협상에서 빈손으로 돌아오더라도 그 이유를 물어보고 합당하면 칭찬해 줘야 한다. 끝으로 ‘성사는 성공-결렬은 실패’라는 이분법에 얽매이지 않는 협상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안세영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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