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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토목공사 공약은 이제 그만두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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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여야 대선 후보들이 지방을 다니며 장밋빛 공약을 쏟아놓고 있다. 대부분이 토목공사 공약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어제 새만금 간척사업 현장에서 “한반도 대개조 사업의 일환”이라며 “새만금 개발사업을 국제화하겠다”고 밝혔다. 대통합민주신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정동영·손학규 예비후보도 “새만금을 두바이나 상하이처럼 동북아의 허브로 만들겠다”고 했다.

 이미 20년을 끌어온 새만금 사업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개발 공약을 남발해 표를 구걸하고, 그것이 국정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을 이번에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부담을 떠안고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만 해도 1987년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해 내놓은 공약이다. 환경단체 등의 반대로 공사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당초 1조7000억원으로 예상된 사업비는 이미 3조원 이상을 잡아먹었다. 앞으로 내부를 매립하려면 3조6000억~6조원이 더 들어갈 것이다. 이런 돈을 쏟아붓고도 아직 사업의 추진 방향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 때 충청권 표를 겨냥해 수도 이전을 공약했다. 정치적 계산으로 추진되는 바람에 위헌 판결 등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행정복합도시로 축소됐지만 토지 보상비만 4조6000억원, 기타 정부 이전 비용까지 합쳐 40조원이 들어간다. 민간의 이전 비용을 제외해도 그렇다.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건교부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후보의 공약으로 추진된 호남고속철은 또 다시 조기 착공론이 제기되고 있다. 무안공항·양양공항 등 각 지방 공항들도 각종 선거 공약으로 이용된 뒤 이용률이 저조해 골칫덩이가 됐다. 이렇게 선거 때마다 내놓은 수많은 토목사업, SOC사업은 대부분 실패했다. 경제성 검토 없는 선심성 졸속 공약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될 소지가 높다. 이명박 후보는 한반도 대운하라는 거대 토목사업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과거 반대했던 행복도시에 대해서도 “일을 할 줄 아는 내가 해야 행복도시를 가장 잘 만들 수 있다”며 오히려 기능을 더 확대하겠다는 뜻까지 내비쳤다. 신당 예비후보들도 지방을 다닐 때마다 선심 공약을 내놓는다. 토목 공약은 당장 눈에 보인다. 유권자를 유혹하기 좋은 수단이다. 하지만 이런 개발형 토목공사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을 수는 없다. 그보다는 소프트웨어 공약이 더 필요하다. 어떻게 해외투자를 끌어들일 것인지, 금융·관광 등 서비스산업은 무엇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교육 인프라는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토목공사보다 중요한 일들이 정말 많다. 21세기에 맞는 선진형 미래의 비전으로 경쟁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