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Family건강] 저혈당 딛고 한라산 등반 "딸아, 건강하게 살아다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한라산의 가파른 산등성이가 앞을 가로막는다. 호흡이 거칠어지며 눈앞이 캄캄해진다. 시야를 가리는 안개비를 뚫고 내딛는 발걸음이 족쇄를 찬 듯 무겁기만 하다. ‘당뇨 모녀’. 어머니 조현미(46)씨와 딸 윤지나(22)씨. 할아버지부터 3대로 이어지는 당뇨 가족의 역사는 끊어지지 않는 쇠사슬 같다. 이제는 운명이거니 하고 받아들이지만 그래도 얄궂어 조씨는 종종 눈물을 쏟는다. 모녀가 당뇨 합병증을 극복하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 것은 지난달 29일. 그들이 올린 사연이 ‘바이엘 드림펀드 캠페인’에 채택돼 10일간의 희망 찾기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

 ◆당뇨 딸 걱정하는 엄마=조씨의 당시 나이 22세. 1형 당뇨병(인슐린 의존형) 진단은 시련의 예고편이었다. 검은 먹구름이 폭풍우로 변하듯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당뇨병은 그녀의 가는 혈관을 막으면서 합병증을 몰고 왔다. 당뇨병성 신증에 시달리다 결국 콩팥을 이식받았고, 당뇨 망막증 수술로 가까스로 실명을 면했다. 그 와중에 남편의 사업 실패, 그리고 임신 중 송아지에 차여 8개월 만에 낳은 아들은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다.

 그녀의 힘겨운 어깨에 또 다른 짐이 얹혀졌다. 4년 전 그녀의 딸 지나가 자신과 같은 1형 당뇨병으로 판명된 것.

 “아이에게 당뇨병을 물려준 나 자신을 많이 원망했어요. 아이의 방에서 과자 봉지가 나오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군것질을 할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요.”

 하지만 대학생인 딸은 이런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합병증에 대한 어머니의 충고를 잔소리로 듣고, 심지어 당뇨관리가 잘된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엄마 미안해요=‘당뇨 모녀의 희망 찾기’는 건강검진에서 시작됐다. 당뇨 검사 결과는 경고 수준. 조씨의 공복혈당은 정상치인 120㎎/㎗을 훨씬 뛰어넘는 255, 딸은 300을 초과했다. 담당의사인 한양대 구리병원 이창범(내분비내과) 교수는 당뇨캠프를 적극 권했다. 잘못된 생활습관을 개선하기 위해선 당뇨병에 대한 이해가 시급했던 것.

 모녀가 참가한 곳은 대한당뇨병학회 충청지회가 주최한 ‘행복충전 당뇨캠프’. 80명의 참가자 중 가장 혈당치가 높았던 모녀를 위해 영양사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균형된 식사와 간식을 시간대별로 나누고, 단순당(설탕·꿀 등) 섭취를 제한하는 대신 섬유소가 많은 채소류를 처방했다. 노래교실, 도전! 당뇨 골든벨, 운동회 등 다양한 레크리에이션은 그동안 모녀를 억눌렀던 당뇨 스트레스를 날려보내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딸의 마음을 연 것은 역할극.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역할을 바꿔 치료연극을 한 것이다. 그동안 엄마의 잔소리에 반항했던 딸은 엄마의 역할을 한 뒤 “짜증을 냈던 내 자신이 부끄럽고,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정상에서 확인한 모녀 사랑=평생 처음 타 본 비행기와 제주도 여행. 해안선을 따라가는 자전거 일주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다음날 한라산 정상에 도전했다. 하지만 평소 운동을 멀리했던 모녀에겐 무리였던가. 등산로로 접어든 지 1시간 무렵, 딸이 갑자기 현기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혈당을 재보니 72㎎/㎗로 저혈당이었다. 동행했던 윤상구(일산 백병원) 전공의가 하산을 제안했다. 하지만 딸은 준비한 초콜릿 바를 먹으며 다시 일어섰다. 머릿속엔 어머니에게 못되게 굴었던 것에 대한 후회와 당뇨병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가 교차했다.

 드디어 정상! 딸은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엄마, 이제부턴 잘할게요.” “딸아 건강하게 살아 다오.” 세찬 비바람을 맞은 모녀의 얼굴엔 빗물과 눈물이 뒤엉켜 있었다.

고종관 기자
 
 ◆바이엘 드림펀드=당뇨환자와 가족이 이루고 싶은 꿈을 실현시켜 주는 바이엘 헬스케어의 사회공헌 프로그램. 사연을 보낸 100명 중 1등에겐 2000만원 상당의 꿈 실현 지원금을, 2등 5명엔 100만원 상당의 건강검진권을, 3등 95명엔 혈당측정기를 제공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