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개선이 핵심처방(긴급점검 공무원 복지부동: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봉급인상엔 한계… 성과급제 고려할만/옥석 제대로 가려 사정해야/성실한 공직자 안흔들려
서울시의 한 구청공무원은 며칠전 발표된 정부의 「공직사회 분위기 쇄신대책」을 보고 시큰둥했다.
내년도에 7.6%의 봉급인상,시·군·구 직원에게 3만원의 대민활동비 지급 등 대책이 공무원들의 사정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없애고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과거 동기 촉매였던 『뇌물관행을 부활시킬 수는 없다』는 서울대 오석홍교수(행정학)의 진단에 많은 전문가들과 정부인사들은 동의한다.
공무원들이 일하도록 만들자고 과거의 나쁜 관행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개혁을 공염불로 만들 수 있고,결국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정부가 며칠전 발표한 「공직사회 쇄신책」도 이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공직사회가 움직일지는 의문이다.
공무원들의 공직의 동기는 잘된 것이든 잘못된 것이든 ▲국가에의 봉사라는 원론적인 사명감 ▲사회적 신분향상 ▲생활보장(일부는 치부로도 해석될만한 생활)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정부주도의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역할이 커지며 이 세가지 동기가 서로 엉키는 독특한 공직문화를 만들어냈다.
새정부의 개혁은 이 가운데 공무원들에게 공직을 이용한 부를 완전 기대하지 말 것과 사회적 신분향상을 무작정 기대할 수 없게 했다.
공직자들은 이것이 불편하고 신분하향을 느끼며 이에 대한 반발로 「복지부동」하고 있다.
여기에 개혁이 시작되며 공직사회가 부패한 집단으로만 비쳐지는데 강한 불만도 있다.
우선 과거 봉급외의 수입으로 높았던 생활수준을 갑자기 낮추기가 어렵다. 봉급인상이 미흡할뿐 아니라 정부의 계획 가운데 대학생 자녀 학자금지원 확대나 무주택공무원의 주택마련 지원계획 등이 너무 소홀히 다루어졌다는 한 중앙공무원의 불평은 이같은 분위기를 시사한다.
따라서 공직사회의 분위기를 일신하고,부패고리를 단절하기 위해서는 60년대 싱가포르처럼 과감한 봉급인상이 첩경이다.
오 교수는 『특히 주사·서기 등 하급직 직원들에게 보수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산상 인상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리만 지키고 있어도 봉급이 나오도록 돼있는 현 봉급체계를 바꾸어 성과급 등 인센티브제를 도입할 필요도 있다고 서울대 김신복교수는 말한다.
모청의 최모씨(6급)는 『비합리적인 근무실적 평가제도가 공무원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한다.
『열심히 일해 직속상관으로부터 최고점을 받더라도 기관장 직속의 근무성적 조정위원회에서 성적조정이 가능,본부 직원이나 핵심부서 직원만 유리한 근평이 나오니 변두리부서 직원들은 일할 맛을 잃게 된다』고 말한다.
한 공무원은 『청와대나 총리실 파견자,비서실 출신 등이 승진에서 우대를 받고 있는 것은 공무원들은 다 안다』고 말한다.
행정쇄신위원회 박동서위원장(서울대 교수)은 『목표관리(MBO) 방식에 의한 근평제도개선이 앞으로의 과제』라며 『공정한 고과에 의한 인사 및 보직관리외엔 왕도가 없다』고 강조했다.
공직사회에 사정을 더 엄격히 해 부패 공무원들이 추방되어야 한다는 공무원들의 요구도 있다.
오 교수는 『새정부들어 강화된 사정활동이 공직사회를 위축시켰다면 처벌이 약했거나 옥석을 제대로 못가렸다고 보아야 한다. 즉각적이고 강력한 처벌이 뒤따르는 엄정한 사정활동안에 복지부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량을 행사하지 않고 『법대로만』을 말하거나 적당주의·업무방치·책임전가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자율성의 확대와 함께 열심히 하려다 저지른 실수에의 관용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열번 설거지하다 접시 한 두개 깬 사람과 설거지 한번 안한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가지 대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무원들의 공인으로서의 사명감과 투철한 직업관의 정립이라는 것이 국민들의 시각이다.<김진원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