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철의 월드비트] 전통음악의 세계화 퓨전으로 뚫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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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제46회 그래미상의 월드뮤직 앨범 부문을 보면 큰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지난해 까지는 '베스트 월드뮤직 앨범' 한 부문뿐이었는데 올해부터는 '베스트 트래디셔널 월드뮤직 앨범'과 '베스트 컨템퍼러리 월드뮤직 앨범' 으로 나누어 2개의 트로피를 시상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월드뮤직은 '컨템퍼러리화(化)'된, 즉 동시대인들의 입맛에 맞게 개량된 음악을 의미한다. 하지만 월드뮤직은 기본적으로 각 나라와 민족 고유의 음악을 뿌리로 삼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래미가 트래디셔널(전통)까지 포용한 건 월드 뮤직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인식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다. '베스트 트래디셔널 월드 뮤직 앨범'의 후보작은 대부분 민속음악들이다.

"민속음악은 모든 음악의 시작이자 중심"이라고 했던 레너드 번스타인의 명언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사실 민속 음악들을 듣다 보면 우리의 국악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생각이 슬며시 든다. 김소희 할머니의 판소리나 질박한 민요 등등. 하지만 너무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의 전통음악을 잘 모른다.

국악이 아주 먼 음악이 돼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일까, 빌보드의 월드뮤직 앨범 차트에서 32주간 1위를 기록한 말리 출신의 가수 알리 파르카 투레의 일침은 여전히 회초리처럼 따갑다. "한국의 우수한 전통음악이 세계화되지 못하는 건 한국의 음악인, 특히 젊은 음악인들이 반성해야 할 문제입니다."

지난해 브라질.쿠바 취재 때 그곳 뮤지션과 평론가들에게 한국 음악의 세계화에 대해 묻자 그들은 공통적으로 '혼합'을 주문했다.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 뮤지션인 이방 린스도 이렇게 조언했다."전통음악이라고 무조건 세계적인 음악이 되는 건 아닙니다. 가장 바람직한 건 한국만의 색깔을 유지하며 외국의 여러 가지를 섞는 '퓨전'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맛과 한국적인 특징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는 비빔밥이란 훌륭한 퓨전음식이 있다. 이제 한국음악을 어떻게 비벼서 외국에 내놓을 것인가를 고민할 시간이 됐다. 월드뮤직은 한때의 유행이 아니다.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오랫동안 지구상에 존재할 음악이다.그렇기 때문에 전통음악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가까이 우리 곁에 있어야 한다. 동시에 대중음악과 국악의 만남이 더욱 더 잦아야 한다.창작과 교류가 활발해지고, 높은 수준의 음악이 만들어질 때 한국음악은 진정 세계화가 가능하다.

끝으로 지난 1년6개월간 '월드 비트'를 아껴주신 독자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필자의 졸필을 함께했던 분들도 한국음악이 세계화되는 그날을 진심으로 기원하리라 믿으면서 연재를 마친다. "감동은 언어의 장벽을 초월합니다!"<끝>

송기철 대중음악평론가. MBC-FM 송기철의 월드뮤직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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