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수사부 퇴직 이틀 만에 변호 맡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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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담당 검사가 재판에서는 변호인석에 설 수 있을까. 그런 재판은 하나마나다. 수사를 제대로 할 리 없고, 검찰 측의 약점을 잘 아는 변호인이 재판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건설업자 김상진씨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부산지검 특수부의 수석검사가 퇴직한 지 이틀 만에 김씨의 변호를 맡았었다고 한다. 직접 담당 검사가 아니었고, 변호를 맡은 지 보름 만에 그만뒀다지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수석검사라면 특수부가 맡은 사건 수사에 직간접으로 개입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퇴직 이틀 만에 변호사 선임계를 낼 사람이 재직 중엔 그 사건에 무심하게 눈을 감고 있었을까. 동료 검사가 변호를 맡았는데도 수사 검사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엄정한 수사가 이뤄질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을 변호인으로 선임한 피의자의 의도야 뻔하지 않은가. 그런 제의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베테랑 검사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1989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불가능했다. 판검사 출신 변호사는 퇴직 직전 근무지에서는 개업할 수 없었다. 그러던 것을 헌법재판소가 평등권과 직업 선택의 자유를 내세워 위헌 결정을 내려버렸다. 법무부는 최소한 퇴직 직전 근무한 법원·검찰청에서 재판이나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만이라도 수임하지 못하도록 다시 변호사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아무리 위법이 아니라도 법조인의 양심상 어떻게 그런 일을 맡을 수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이 몸담았던 검찰을 욕보이는 일이 아닌가.

어디 그뿐인가. 피의자 김씨는 과거 부산지검 특수부장과 골프를 치고, 이번 사건 처리에 대해서도 문의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씨는 부산지검을 거쳐간 다른 검사들과도 친분을 과시했다고 한다. 이래서야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었겠는가. 걸핏하면 정치권이 국정조사·특검을 거론하는 상황은 검찰이 자초한 것이다. 검찰은 수사 결과로 말할 수밖에 없다.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권력의 압력, 돈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