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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도 안 된다" 때와 표정 완전히 딴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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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무현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신정아씨 연루 의혹’과 관련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경빈 기자, [연합 뉴스],[뉴시스]

▶뉴스분석 노무현 대통령은 10일 오후 호주 시드니에서 돌아와 변양균 전 정책실장의 사표 수리를 지시했다. 그 뒤 20시간 만인 11일 오전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변양균 전 실장과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 관련 의혹들에 대해 "깜도 안 되는 의혹"(8월 31일), "소설 같은 느낌"(9월 3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때와 180도 달라진 자세였다.

변 전 실장 관련 대목을 말할 때는 한숨까지 내쉬며 "난감하다" "당황스럽다" "곤혹스럽다"를 되풀이했다. "검찰 조사 결과가 정해지고 나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대국민 사과의 여지도 남겼다. 곁에 선 문재인 비서실장과 전해철 민정수석 등 청와대 참모들의 표정에선 곤혹감이 배어났다.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전날 문재인 비서실장이 변 전 실장 문제를 보고하자 얼굴이 잔뜩 굳어진 채 "변 실장 말만 믿다 내가 거짓말을 한 셈"이라며 한탄했다고 한다.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청와대의 위기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고 지적했다. 여론도 '권력의 심장부인 청와대가 측근의 거짓말에 놀아나 의혹을 감싸기에만 급급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청와대의 위기감은 크다. 변 전 실장과 정 전 비서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만큼 수사 과정에서 새로운 의혹이 터져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도덕성을 주장하며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을 거부해 온 청와대로선 급격히 힘이 빠질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선 건 파문을 조기 진화해야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 같다. 거침없이 '측근 감싸기' 발언을 했던 종전과 달리 추가 의혹이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특히 정 전 비서관 문제에 대해선 '측근 비리'라는 단어까지 썼다. 임기 6개월을 남겨둔 노 대통령은 이제 레임덕과의 힘겨운 싸움에 돌입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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