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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혁 칼럼] 국민을 감동시키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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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이 민심을 잡기 위해 온갖 꾀를 다 쓰고 있다. 설 연휴 때 TV를 보니 정당대표들이 연일 시장을 누비고 어떤 이는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돕는가 하면 어떤 이는 손수 떡국 퍼주기 봉사를 하기도 한다. 보육원을 찾기도 하고, 공장을 찾아 근로자를 격려하기도 한다. 하는 말마다 정이 넘치고 민생을 걱정하는 충정이 놀랍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이런 지극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별로 감동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민심은 더 싸늘하고 정치인들의 부패와 정쟁에 분노와 경멸을 드러낸다는 것이 언론이 보도하는 민심현장이다. TV에서 봐도 "또 선거 때가 됐구먼"하는 기분일 뿐 작은 감동도 느끼기 어렵다. 결국 정치인들은 국민을 감동시킬 방법을 좀더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자기 손해 없이 감동줄 수 없어

설 연휴 사흘 휴간 끝에 나온 일요일 신문을 보니 중국 지도자들도 춘절(春節.설)을 맞아 민생정치를 했다고 한다. 원자바오(溫家寶)총리는 한 시골을 찾아 노인과 얘기를 나눴는데 이 노인은 한참 얘기를 하다가 새삼 총리의 얼굴을 들여다 보더니 "혹시 溫총리가 아니시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요란한 색깔의 점퍼를 입고 우르르 떼로 몰려다니는 한국 방식과 중국 총리의 방식 중 어느 쪽이 더 사람을 감동시킬까.

요컨대 감동이란 입에 발린 소리나 깜짝 이벤트에서 나오진 않는다. 세상에 '감동학'이란 학문이 있는지는 못 들어봤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자기희생.지성(至誠).진정성(眞情性).용기…, 이런 요소 없이 사람을 감동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을 감동시키자면 우선 자기가 손해를 봐야 한다.

자기는 재미 볼 것 다 보고, 챙길 이득 다 챙기면서 사람을 감동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봉사활동도 자기 잘 되기 위해 하는 것은 감동을 줄 수 없다. 대부분 정치인의 봉사활동이 바로 그런 것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진정으로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봉사가 아니라 표 얻기 위한 선전.사진촬영용 봉사로만 보이는데 무슨 감동이 있겠는가.

정치인이 정말 국민을 감동시키고 싶다면 국민과 국익을 위해 자기손해를 각오해야 한다. 표와 인기가 떨어지고 재선이 어렵더라도 나라와 국민을 위해 옳은 일이라면 그 길을 가는 모습을 보일 때 감동을 줄 수 있다. 권력자에게 감연히 직언.고언(苦言)을 할 때 사람들은 감동을 받게 된다.

예컨대 노무현 대통령의 최대 자산은 지역주의 벽을 깨기 위해 낙선을 각오하면서도 세번씩이나 부산에서 출마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지지자들을 결집시켰다. 그런 盧대통령이지만 선거를 앞두고 일자리 창출이니 정년 연장이니 군복무 기간 단축이니 하고 내놓은 많은 정책은 진정성보다는 정략성이 더 느껴지기 때문에 덤덤할 뿐이다.

각 정당의 이른바 민생정치나 듣기 좋은 각종 정책에 사람들이 시큰둥한 것도 마찬가지다. 정치인에게 진정(眞情)이 있다면 국민을 감동시킬 일은 얼마든지 있다. 가령 농촌 출신 의원이 표 떨어질 각오를 하고 자유무역협정(FTA)은 필요하다고 외칠 때 사람들은 감동을 받지 않겠는가. 충청 출신 의원이 행정수도는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해 재고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면 그의 인격을 새삼 평가하지 않겠는가.

*** 얄팍한 쇼는 국민을 속이는 것

그러나 요즘 정치인들은 너무 얄팍하고 뺀들뺀들해서인지 이런 감동을 주는 정치를 볼 수가 없다. 뭔가 좀 여유있고, 사람을 푸근하게 하고, 도량있는 인물을 보기 어렵다. 너무 각박하고 손해를 안 보려는 아생살타(我生殺他)식 정치가 횡행한다. 보스가 자기희생의 모범은 안 보이면서 물갈이만 외치고, 국가를 위해 무슨 주견(主見)을 가졌는지도 모를 인물들이 개혁만 외쳐대기도 한다.

지금 어느 정당도 총선 우세를 점치기 어려운 혼미 상황이다. 앞으로 누가 더 민심을 잡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릴 가능성이 크다. 정당마다 개혁을 외치고 공천혁명을 부르짖지만 그들의 말에 진정과 국가를 위한 헌신을 느끼기 어렵다면 국민이 감동할 리 없다. 이벤트나 쇼, 인기인 포섭 등은 정치개혁도 아니고 공천혁명도 아니다. 국민의 눈을 속이자는 것일 뿐이다. 정당들은 정말 국민을 감동시키는 정치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송진혁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