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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페리訪韓 개운찮은 흔적-美첨단무기 도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북한핵문제와 관련,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윌리엄 페리美국방장관의 訪韓은 팀스피리트훈련의 11월 실시,한국측의 美製첨단무기 구매 동의등 주목할만한 결과를 남겼다.그중에서도 美製무기 구매 합의는 그동안 페리장관이 보여온 강경입장이 우리에게무엇을 의미하는가와 관련,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페리장관은 21일 離韓회견에서 對韓무기판매 논의 여부를 묻는질문에『확실히 말해두지만 나는 무기상이 아니다.어느 누구와도,어떤 무기체계에 대해서도 논의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그가 한국을 떠나자마자 월스트리트 저널등 미국의 주요신문들은 한국정부가 아파치 헬기.매버릭 미사일.對砲위치 추적 레이더등 미국의 첨단 무기를 구매하기로 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페리 장관이 한국측과 90분간 韓美안보태세를 협의하는 자리에서 한국측이 무기 구입에 동의했다는 것이다.하루도 안돼『나는 무기상이 아니다』는 페리의 발언은 뒤집혀지고 말았다.
미국 첨단무기의 구매가 우리 군사력 강화에 큰 보탬이 될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아파치 헬기 한대에만 1백10억원이 넘는 고가 장비이니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지금 막대한 돈을 들여 미국 첨단무기를 들여오는 것이짧게는 북한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긴장완화에,길게는 한반도 평화유지및 통일에 얼마만큼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이 문제는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고도의 판단을 요하는 것일 뿐더러 정치적 전망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도 있다.
우리정부의 무기구입 결정과 별도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우리정부의 무기구매 결정이 페리장관이 앞장서 대변해온 미국 정부내 매파의 입장 및 상황판단에 크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이다.그럼에도 페리장관이 즉각 드러날 무기판매 사 실을 무기구입처이자 사용처인 한국에서 공개적으로 부인했다는 사실은 미국의이익 앞에서 한국의 처지는 별다른 고려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페리장관은 이달초『핵개발 저지를 위한 예방폭격도 불사한다』며對북한 전쟁불사론을 처음 제기했고,최근엔 북한의 핵연료봉 교체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입회요청으로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는 판에『유엔이 對북한 제재를 하지 못할 경우 일부 국가만으로도 제재를 강행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밝혔다.물론 북한이 추가사찰을 수용하지 않고 핵개발을 계속,외교적 노력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을 경우라는 단서가 붙지만 페리장관의 강경발언이 상황을 에스컬레이트 시켜온 것은 틀림 없는 것같다.
스탠퍼드대학에서 군축문제를 강의했고 방산업체회장을 역임하는등방산.군수분야 전문가인 페리장관이 한반도의「위기」를 빌미로 美군수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스러운 대목이 아닐수 없다.
유진 캐럴 美국방정보센터(CDI)소장이 지난 22일『미국이 상상에 의한 군사적 위기를 바탕으로 한반도에 병력과 무기를 증강하는등 공격적 자세를 보이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군사 위기를조장할 수도 있다』고 진단한 것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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