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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풀린 공직기강(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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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꼼짝 안한다는 말을 들어온 일선 행정이 요즈음에 와선 앉은 자리에서 나사마저 풀려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상층부의 개혁방향도 갈피를 잡기 어렵고,개혁의 강도도 눈에 띄게 악화되자 복지부동에서 슬슬 편한 길이나 개인적 잇속을 찾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사례를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철도청장은 영등포역 열차추돌사건을 심야 TV뉴스를 통해 처음 알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2일 첫 과천선 지하철 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지하철공사 주요 간부들은 토요일이라고 거의 모두가 퇴근해버려 적절한 초기대응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선의 일처리에도 적당주의가 만연돼 있다는 인상이다. 영등포 열차추돌사고는 신호장치 설치를 업자에게만 맡겨두고 사후 점검을 제대로 안한 결과였다. 과천선 사고도 시험기간중에 이미 고장이 여러번 났음에도 대책없이 개통을 서두르는 바람에 일어났다. 또 지난달 서울 중랑구·성동구 수돗물 악취소동 때도 서울시상수도사업본부는 주민들의 신고를 「과민반응」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는 것이다.
맡은 일에는 이렇듯 무성의하면서 이기주의는 슬슬 발동시키고 있다. 외환은행사건이 그 좋은 예고,가짜 음주단속 스티커로 「삥땅」해온 교통경찰관들이 또다른 보기다. 그런가 하면 내년 지자제선거에 출마할 뜻을 지닌 일부 일선 행정책임자들을 주민의 이해가 상반될 사업추진은 애써 피하는가 하면,득표에 도움될 교제나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기관장 아래의 기관일수록 벌써부터 레임덕 현상이 생겨 기관장의 영도 서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런 현상들을 전반적인 현상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일반국민들은 그런 인상을 받고 있고,그로 해서 비단 공직사회뿐 아니라 사회전체의 기강이 어딘가 느슨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점을 국정의 책임자들은 바로 인식해야 한다.
개혁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는데 필요한 것은 바람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에 그 어떤 바람이 일고 있는가. 바람보다는 새정부의 「개혁」에 대한 실망의 소리가 점차 높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공직사회의 나사가 풀리고,비리와 부패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사회전체의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위기감을 갖고 공직사회를 다시 한번 다잡아 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사정이나 감사에만 의존하려 해선 안된다.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국정의 구체적 목표를 제시해주고,그를 일관성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행정은 정치와는 다르다. 정치적 고려로 일관성을 잃으면 행정은 흔들리게 마련이다. 우선 행정책임자들로부터 더 직분에 충실하고,더 열심히 일하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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